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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흘 뒤, 강이설은 외할머니의 장례를 모두 치른 후에야 온몸에 피로를 안은 채 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신재영은 그녀가 며칠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가끔 돈을 보내거나 짧은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사흘이나 떼를 썼으면 이제 풀릴 때도 됐겠지. 외할머니 쪽은 어때? 해외 실력 좋은 의사들을 섭외했어. 며칠 뒤에 공동 진료를 할 거야.] 시간을 초 단위까지 쪼개 쓰는 그가 바쁜 와중에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만으로 그 나름의 사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었다면 외할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어야 했고 이번 침묵이 ‘투정’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했어야 했다. 강이설은 비웃듯 핸드폰을 끄고 변호사가 보내온 이혼 합의서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서류를 넘기며 연예 뉴스를 틀어 놓았다. [강씨 가문 둘째 딸, 비밀리 귀국... 신씨 가문 후계자와 옛 인연 재점화] 함께 실린 사진에는 영화관에서 나오는 신재영과 강지연, 그리고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신재영은 그녀를 그런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요 며칠간 그는 뉴스에서 말한 그대로 신재영은 줄곧 강지연 곁에 있었을 것이다. 아침 회의에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던 그가 무려 30분이나 늦었고 급히 나타났을 때는 목덜미에 선명한 키스 마크가 남아 있었다. 식사조차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던 그가 강지연이 마음에 드는 식당을 고를 수 있도록 쇼핑몰을 밤새 돌아다녔다. 신재영의 철저하던 시간표는 전부 강지연에 의해 무너졌지만 그는 그저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은 인생의 시간을 전부 맡기겠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강이설은 아무 표정 없이 TV를 껐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이혼 합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신재영에게 카페에서 열두 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고 신재영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랑 지연이에게 다른 일이 생겼어. 조금만 기다려.] 커피잔을 든 강이설의 손이 굳어 버렸고 커피의 쓴맛은 혀끝에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강이설은 거리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년 한 경매 시작 전 신재영을 애타게 기다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예쁜 얼굴만 가졌을 뿐 남편의 마음조차 붙잡지 못했다며 그녀를 비웃었다. 그러나 신재영은 경매 시작 1분 전에 그녀 곁에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고 모두에게 선언했다. 강이설은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경매가 끝난 뒤 신재영은 그녀 옆에서 그대로 쓰러졌고 강이설은 비서에게서 그제야 사정을 들었다. 그는 사흘 밤낮을 연달아 일한 데다가 오는 길에 장염까지 도졌지만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끝까지 버텼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신재영은 그녀에게 아주 조금의 진심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엄격했지만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 한순간에 변해 버린다. 밤이 되어서야 신재영이 카페에 나타났다. 따뜻한 커피가 식을 새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일이 있어 얼른 가봐야 해. 3분 줄게. 그 안에 용건 말해.” 강이설은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는 3분조차 자신에게 베푸는 듯했다. “서명해요.” 강이설은 이미 이혼 합의서를 서명란으로 넘겨 다른 서류들 아래에 깔아 두었다. “보상 문제면 비서에게 바로 말하면 돼. 굳이 날 부를 필요는 없잖아.” 신재영은 그녀가 보상을 요구한다고 여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연이는 이제 막 귀국해서 익숙하지가 않아. 내가 곁에 있어야 해.” 강이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다. “전 보상도 필요 없고, 당신과 이혼만 원한다고 하면요?” “불가능해.” 신재영은 단호했다. 예상 밖의 대답에 강이설은 멍하니 되물었다. “왜요?” 신재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한번 그녀의 마음에 수없이 칼을 꽂았다. “난 너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 매몰 비용이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 이혼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연이는 자유로운 성격이라 부잣집 사모님들 사이에서 견뎌내지 못할 거고 잘 어울리지도 못할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 지연이가 돌아와도 신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네 거니까.” 이미 만신창이가 된 강이설의 마음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결국 그녀가 ‘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더 ‘적합해서’였을 이혼을 거부할 뿐이었다. 신재영은 그저 그녀에게 들인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신재영은 핸드폰을 힐끗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지연아, 발을 삐었어? 걱정하지 마. 지금 바로 갈게.”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마지막에 서명된 서류가 이혼 합의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신재영의 강지연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나 뜨겁고 노골적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단 1초조차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강이설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가슴을 가득 채운 씁쓸함과 고통을 그대로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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