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퇴원하는 날, 주태준은 드물게 병원에 나타나 양혜린을 경매장에 데려가 기분 전환도 하고 물건을 좀 사주며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양혜린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주태준은 반강제로 그녀를 차에 태웠다.
차에 타자마자 뒷좌석에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주태준에게 바싹 붙어 있는 강가영이 눈에 들어왔다.
양혜린은 강한 조롱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애초에 그가 말한 보상이란 애인을 데리고 와서 그녀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경매장에는 재계와 정계의 유명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주태준은 큰돈을 아끼지 않고 양혜린을 위해 값비싼 보석 여러 점을 낙찰받았고 주변에서는 부러움 섞인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마지막 하이라이트 경매품, ‘영원의 심장’이라 불리는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등장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 목걸이는 값비쌀 뿐 아니라 단 하나뿐인 사랑과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경쟁은 유난히 치열했다.
결국 주태준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모든 경쟁자를 제치고 ‘영원의 심장’을 손에 넣었다.
모두가 그 상징적인 목걸이가 양혜린의 것이 될 거라 생각한 순간 주태준은 돌아서서 그 정교한 벨벳 케이스를 직접 강가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순식간에 장내는 충격으로 술렁였다.
주태준은 양혜린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설명했다.
“혜린, 오해하지 마. 오늘 네 거도 많이 샀잖아. 가영이한테도 하나쯤은 사줘야지. 나 따라다니기도 쉽지 않잖아.”
주변의 억눌리지 않은 속삭임이 바늘처럼 양혜린의 귀를 찔렀다.
“쯧쯧... 주씨 가문 사모님이라고 해도 별수는 없네요. 체면이 완전 짓밟혔잖아요...”
“맞아요. 아무리 다른 물건 열 개, 백 개 사줘도 저 ‘영원의 심장’ 하나만 못 하죠...”
“저 의미를 생각하면... 에휴, 주태준은 체면 하나도 안 남겼네요...”
양혜린은 숨쉬기조차 버거워졌고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일어나 바람을 쐬러 나갔다.
막 테라스에 도착하자 강가영이 따라 나왔다. 그녀의 목에는 방금 낙찰받은 ‘영원의 심장’이 걸려 있었고 블루 다이아몬드는 어두운 달빛 속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사모님, 왜 혼자 계세요? 기분 안 좋으세요?”
강가영은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기세등등하고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태준 씨가 워낙 절 아끼는 걸 어떡해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주씨 가문 안주인이 되면 적어도 당신처럼 무능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 사람 마음 잡아서 저만 사랑하게 만들 자신 있거든요.”
양혜린은 눈앞의 이 어리석을 만큼 순진한 여자를 보며 말할 힘조차 없을 만큼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침묵은 강가영을 자극했다.
“못 믿겠다고요?”
강가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요! 그럼 증명해 보일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양혜린이 반응할 틈도 없이 강가영은 갑자기 자기 옷을 찢기 시작했다. 어깨끈을 끊어내며 살을 드러낸 채 연회장 쪽으로 달려가며 공포에 찬 비명을 질렀다.
“태준 씨! 살려줘요! 사모님이... 사모님이 사람을 시켜 저를 강간하려고 해요!!!”
양혜린은 그 자리에 선 채 이 조악한 누명을 바라보며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걸었다.
이내 주태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급히 달려왔고 옷이 엉망이 된 강가영을 보자마자 품에 감싸안은 채 날 선 시선으로 양혜린을 쏘아보며 억눌린 분노를 담아 말했다.
“양혜린! 또 무슨 짓이야?! 설명해!”
양혜린은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 말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설명해.”
“증거가 뻔한데도 발뺌해, 지금?!”
주태준이 호통쳤다.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보라고!”
“좋아.”
양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섬뜩할 만큼 차분했다.
“그럼 내가 설명해 줄게.”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 하나를 눌러 침착하게 몇 마디를 지시했다.
잠시 후, 누더기를 입고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 몇 명이 끌려와 화려한 공간과 말끔한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양혜린은 주태준의 품에 보호받고 있는 강가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랑 자요. 그럼 이 돈은 전부 가지게 될 거예요.”
그녀는 말하며 클러치에서 두툼한 현금을 꺼내 바닥에 뿌렸다.
장내는 완전한 침묵에 빠졌다. 그저 노숙자들만 눈이 뒤집혀 몰려들어 강가영의 옷을 미친 듯이 찢어댔다.
“아... 살려줘... 살려줘!”
모두가 양혜린의 이 충격적인 행동에 얼어붙었다.
“양혜린! 너 미친 거 아니야?!”
주태준은 눈이 찢어질 듯 양혜린을 노려보며 잔뜩 분노한 얼굴로 권총을 뽑아 천장을 향해 발포했다.
총성에 모두가 얼어붙었고 노숙자들은 머리를 감싸 쥔 채 흩어져 도망쳤다.
“꺼져! 전부 꺼져!”
주태준이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질렀다.
결국 겁에 질린 노숙자들은 기어가듯 도망쳤다.
주태준은 떨고 있는 더 엉망이 된 강가영을 품에 꼭 안고 피에 굶주린 짐승 같은 사나운 눈으로 양혜린을 노려봤다.
강가영은 그의 품에서 숨이 넘어갈 듯 울며 말했다.
“태준 씨... 저... 노숙자한테 입맞춤 당했어요... 저 더러워졌어요... 꼭 복수해 주세요... 저 여자는 너무 악독해요...”
주태준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이전과는 다른 냉혹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반드시 복수해 줄게.”
그는 고개를 들어 양혜린을 보며 한 글자씩 명령했다.
“저 여자 묶어. 서울 롯데월드타워 꼭대기에 매달아! 하룻밤 내내! 내 여자 건드리면 어떤 꼴이 되는지 전국에 보여줘!”
양혜린은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웃음은 극도로 비꼬였고 극도로 처참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은 채 경호원들에게 끌려갔다.
그날 밤, 한강의 야경은 여전히 찬란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서진 인형처럼 차가운 타워 꼭대기에 매달린 채 밤바람과 도시의 시선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