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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공호열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 동생이 언제부터 내 사생활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지?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그러자 공지율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 오빠니까 당연히 걱정하죠.” 연정란이 입을 열었다. “동생한테 왜 그래? 걱정해주는 게 잘못이야? 그리고 지율이 말이 맞잖아. 그때 사람들 앞에서 결혼하자고 강요한 게 네 체면을 구긴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이 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공호열이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의 태도에 공지율은 크게 놀랐고 연정란 또한 불쾌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정란은 재벌 집 딸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품위를 잃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숨을 깊게 들이쉬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렇다면 그냥 본가에 데려가는 게 좋겠어. 할아버지 병간호하기도 편하고 또 어릴 때 제대로 못 받은 교육을 지금이라도 받아야지. 공씨 가문에 들어오려면 당연히 익혀야 하는 것들이야. 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이젠 네 체면, 공씨 가문의 체면과 관련되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권예진의 생각은 묻지 않았다. 선택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좋고 싫음을 말할 자격도 없었다. 공씨 가문에서 공한무와 최애순을 제외하고 권예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도우미들조차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본가에 가게 되면 얼마나 힘든 날들이 펼쳐질지 뻔했다. 하지만 오아시스에서 지낸다면 공호열 한 사람만 상대하면 되었다.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던 권예진은 공호열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고 힐끗 보고는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오아시스에 남아서 뭘 하려고? 날 덮치겠다는 건가?’ 연정란이 아들을 보며 물었다. “호열아, 네 생각은 어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대답했다. “그냥 오아시스에서 지내게 하죠.” “왜?” 연정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가르칠게요.” 공호열은 의미심장하게 권예진을 봤다가 연정란에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얘 때문에 화병이라도 나실까 봐 걱정돼서요.” “일이 바쁜 네가 이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결혼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어요.” 공호열이 말했다. “그래. 본가에 데려가는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스캔들에 대해서 설명해야지 않겠어?” 연정란이 화제를 돌렸다. “공씨 가문 안주인이 될 사람이 집안이 변변찮고 배운 게 없으면 몸가짐이라도 깨끗해야지. 의사를 데려왔으니까 몸 좀 검사해보자. 결백한지 아닌지 보게.” 만약 권예진이 처녀가 아니라면 바로 쫓겨날 것이다. ‘몸을 검사한다고?’ 그들이 좋은 의도로 왔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권예진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고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모자 아니랄까 봐. 어쩜 하는 짓이 똑같아?’ 계속 말을 꺼낼 기회를 엿보던 권예진은 급히 숨을 가다듬은 다음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저랑 우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 “맹세?” 공지율이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맹세로 해결할 수 있다면 과학은 왜 필요하고 법은 왜 필요하겠어? 대체 어떻게 자랐길래 그렇게 순진한 거야?” 연정란이 여의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가서 몸 검사해봐요.” “네, 사모님.” 간호사가 권예진 앞으로 다가가더니 손짓으로 안내했다. “권예진 씨, 가시죠.” 태도가 공손해 보여도 사실은 무척이나 강압적이었고 눈빛에도 경멸이 가득 섞여 있었다. 권예진이 꼼짝도 하지 않아 간호사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 손 놔요.” 공호열이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호통쳤고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있었다. 그는 옆에 앉아 있던 연정란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직접 검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놀란 공지율이 입을 쩍 벌렸다. “오빠, 저런 헤픈 여자 때문에 몸 더럽힐 필요 없어요...” “닥쳐.” 공호열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연정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아서 해결하겠다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게. 지율아, 가자.” 그러고는 화를 내면서 오아시스를 떠났다. 권예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러자 공호열이 그녀를 쏘아보면서 비꼬았다. “사고 칠 배짱은 있으면서 뒷수습할 재간은 없어? 내가 널 도와준 게 아니라 사고 치기 전에 쳐도 괜찮은지 생각부터 하라는 말이야.” 권예진은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호열이 실눈을 뜬 채 그녀의 아래턱을 꽉 잡더니 억지로 눈을 마주치게 했다. “결백한지 아닌지는 네가 뭐라 해도 소용없어. 내가 직접 확인해볼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찌익. 니트 상의는 그대로 두 조각으로 찢어졌고 권예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허리에 있는 원피스 지퍼에 가 있었다. 차가운 식탁에 기대어있는 지금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엄청난 수치심에 휩싸였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억지웃음을 쥐어짜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 이 옷이랑 안 맞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연달아 두 번이나 찢긴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권예진이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갑자기 말했다. “내가 벗을게요.” 그 말에 공호열은 원피스 지퍼를 만지던 손을 거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권예진은 몸을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지퍼를 내렸다. 원피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갈색 약을 바른 찰과상 부위를 본 순간 눈빛이 흔들리더니 얼굴을 세게 찌푸렸다. 권예진이 등을 돌린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우현이 팬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우현이가 날 구해줬는데 계속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관계가 외부에 알려는 걸 호열 씨가 원치 않는 것 같아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블루 베이로 갔던 거예요. 그리고 그 뒤의 일은 호열 씨가 알고 있는 그대로고요.” 커다란 주방에 권예진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깃털처럼 그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거실이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했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호열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권예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 딸깍. 그녀는 브래지어 후크를 풀고 손을 놓으면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몸에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화들짝 놀란 권예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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