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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공씨 저택, 거실의 분위기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르신의 병을 치료해줄 수는 있어요. 호열 씨가 다윤이랑 파혼하고 나랑 결혼한다면요.” 권예진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순한 얼굴에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당당함이 묻어있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촌스러운 옷차림에 산에서 온 촌뜨기라 의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공씨 가문의 가주인 공호열에게 결혼을 강요하다니... 공호열은 재벌 순위 1위에 오른 인물이고 공씨 가문에서 가장 젊은 가주이며 상업계에서도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잘 보이려고 몰려들었다. 말괄량이 같은 이 여자는 죽는 게 두렵지 않단 말인가? “네까짓 게?” 그때 남자의 비웃음이 섞인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공호열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한 순간 권예진은 심장이 갑자기 멎는 것만 같았다. 그의 이목구비는 정교하게 빚은 조각처럼 흠잡을 데 없었고 몸짓 하나하나에 재벌의 우아함과 귀티가 흘렀으며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졌다. 이런 남자는 사람들을 기꺼이 굴복하게 만드는 힘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었더라면 권예진도 공한무의 병을 빌미로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닥쳐, 권예진.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의사인 척하면서 동생의 남자를 빼앗아?” 그때 권예진의 생모인 장옥영이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 한바탕 혼내고는 아첨하는 표정으로 공호열에게 설명했다. “호열아, 쟤 헛소리 듣지 마. 금방 산에서 데려왔어. 어릴 적부터 도교 사원에서 자라 초등학교도 못 다닌 애가 의술을 알 리가 없지. 우리가 잘못 가르쳤어. 감히 널 넘볼 정도로 제 주제를 모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장옥영의 태도가 어떻든 권예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단호한 눈빛으로 공호열을 쳐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호열 씨, 어르신 지금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고 심박 수가 엄청 빠르죠? 이대로라면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제때 병원에 모셔간다고 해도 지금 몸 상태로는 그 어떤 수술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할아버지 증상을 네가 어떻게 알아?” 공호열의 날카로운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녀에 대한 의심이 더 한층 깊어졌다. 그런 눈빛에도 권예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설명했다. “한의학에서는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거든요. 보자마자 바로 알아냈어요.” 공호열은 다소 뜻밖이라는 듯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래? 그럼 할아버지 병만 고칠 수 있다면 너랑 결혼할게.” 이건 권예진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공한무가 이젠 백 살이 넘어 수술대에서 살아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호열은 효심이 깊었고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떤 조건을 내걸든 결국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공씨 가문이 발칵 뒤집혔다. 특히 권예진의 여동생이자 공호열의 약혼자인 김다윤이 가장 노발대발했다. “호열 씨.” 김다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많은 교수나 명의들도 할아버지 병을 치료하지 못했는데 무턱대고 맡기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오늘은 공호열과의 혼사를 논하고 그녀야말로 공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이라는 걸 확실시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공한무의 병이 위중해졌고 권예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결혼을 강요했다. 김다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공씨 가문 사람들이 바로 맞장구를 치면서 권예진을 비웃었다. “다윤이 말이 맞아. 촌구석에서 온 계집애가 어르신을 해치면 어쩌려고 그래?” “위급한 상황에 이득을 챙기려는 걸 보면 분명 좋은 마음은 아니야. 호열아, 절대 쟤한테 홀리면 안 돼.” “...” 공호열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위압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러고는 권예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권예진은 그의 두 눈을 빤히 보면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말했다. “자신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지금 당장 결혼하자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어르신의 병을 고친 후에 혼인신고 해요.” “권예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내 약혼자를 빼앗은 건 따지지 않을 수 있어. 근데 어떻게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쳐?” 김다윤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무척이나 관대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재벌 딸이라는 신분만 아니었더라도 당장 권예진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것이다. ‘촌뜨기 주제에 신분 상승을 꿈꿔? 넘볼 걸 넘봐야지.’ 아니나 다를까 김다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호열의 표정이 급변했다. 권예진을 몇 초 동안 쳐다보는 동안 두 눈에 경멸과 혐오가 얼핏 스쳤다. ‘참으로 탐욕스럽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여자야.’ 돈은 아무리 많아도 언젠가는 다 써버릴 때가 있기에 공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어야만 평생 누릴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어쩜 이리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이런 방법으로 자기 여동생의 약혼자를 빼앗아? 그 많은 전문가들도 고치지 못한 어르신의 병을 자기가 뭔데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거야?’ 하지만 권예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설령 공호열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공한무의 병을 고쳐줬을 것이다. 의사로서 죽어가는 사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차갑고 조롱 섞인 눈빛으로 쳐다봐도 권예진은 가볍게 무시하고 공호열에게 말했다. “어르신의 병은 내가 알아서 고쳐드릴 테니 호열 씨는 나랑 결혼할 준비만 하면 돼요.” 그러고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앞으로 걸어가더니 공한무의 맥을 진지하게 짚어 보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은침 세트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공한무의 왼손에 침을 놓은 다음 두 번째 은침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침을 놓지 않고 옆에 있는 공호열을 쳐다보았다. 권예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윤기 있는 입술을 깨문 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빛이 참으로 맑고 투명했다. “난 권예진이라고 해요.” 공호열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권예진의 두 눈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침을 놓자 경련 증상이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 공호열은 그제야 그녀를 진지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색이 바랜 청바지에 보풀이 생긴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산속에서 자라 형편이 어려웠던 탓인지 또래에 비해 다소 말랐다. 하지만 이목구비는 아주 정교하고 뚜렷했으며 피부는 도자기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특히 칠흑처럼 검은 두 눈은 초롱초롱하면서도 맑았다. ‘확실히 실력은 좀 있어. 근데 그렇다 해도 탐욕스럽고 염치없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 김다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보고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했다. 권예진이 정말로 공한무를 살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어머니 장옥영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장옥영 또한 당황해하며 최애순에게 말했다. “사모님, 예전에 호열이를 구한 건 우리 다윤이에요. 이 혼사...” 공한무의 옆을 지키던 최애순은 남편의 상태가 호전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장옥영을 쳐다보지 않고 옆에 있는 손자에게 말했다. “호열아, 네 할아버지 나이가 많으셔서 이번에 살려낸다고 해도 얼마 남지 않으셨을 거야. 혼사는 애들 장난이 아니니 네가 스스로 결정해. 할아버지를 위해 네 결혼을 희생할 필요는 없어. 네 행복이 가장 중요하단 것만 명심해둬.” 최애순은 인자한 얼굴로 말하면서 손자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저 여자와 결혼할 수 있어요.” 공호열은 싸늘하게 말하면서 조롱 섞인 눈빛으로 권예진을 쳐다보았다. 안색이 겨울 날씨보다도 더 차가웠다. “저한테 결혼을 강요했다는 건 평생 독수공방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거겠죠. 절 협박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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