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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공호열의 매정한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권예진의 마음을 인정사정없이 찔렀다. 찔릴 때마다 그 고통이 상당했다. 권예진은 손에 든 은침을 꽉 쥐었다. “너무 그렇게 단정 짓지는 마세요.” 그러고는 계속해서 공한무에게 침을 놓았다. 등 뒤에 수많은 시선이 권예진에게 쏟아졌다. 비웃음과 조롱이 섞여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노련하고 능숙하게 침을 놓았다. 침을 다 놓은 후에는 처방을 써서 옆에 있는 도우미에게 건넸다. “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서 하루에 세 번씩 드시게 하세요.” 그런데 도우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경멸 섞인 눈빛으로 권예진을 쳐다보기만 했다. 권예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도우미마저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으니 앞으로 공씨 가문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공호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공호열이 어두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시키는 대로 해.” 도우미는 그제야 처방을 받고 약을 지으러 갔다. 공한무가 안정을 취했을 땐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공호열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전제 조건은 공한무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다. 당장 고칠 수 있는 병도 아니고 시간이 필요했기에 권예진은 공씨 저택에서 지낼 명분이 없었다. 그때 집사가 걸어왔다. “권예진 씨, 시간이 늦었어요. 여기서 택시 잡기 어려우니까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권예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공호열의... 뜻일까?’ 고된 하루를 보낸 탓에 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쾅. 그런데 그때 검은색 벤틀리가 갑자기 심하게 덜컹거리더니 시동이 꺼지면서 멈춰 섰다. 권예진은 깜짝 놀라 재빨리 눈을 떴다.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설마...’ 곧이어 집사의 한마디가 그녀의 추측을 확인시켜주었다. “예진 씨, 죄송합니다.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권예진은 미안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리만큼 운이 나빴다. 공씨 가문의 벤틀리마저도 그녀의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길에 있던 맨홀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왼쪽 앞바퀴가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집사는 액셀을 힘껏 밟으며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집사님, 여기서 집까지 멀지 않으니까 그냥 걸어갈게요.” 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얼마 걷지 않아 이내 김씨 저택에 도착했다. 하얀 3층짜리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권예진은 망설임 없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안내 음성에 권예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는 곧바로 어떻게 된 건지 알아챘다. 이번에는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 도우미 장숙자는 권예진인 걸 보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예진 씨, 왜 이제야 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예진 씨 부모님의 안색이 엄청 좋지 않으시더라고요. 오자마자 현관문 비밀번호부터 바꾸더니 예진 씨 짐을 모두 정리하라고 했어요.” 이 집안에서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장숙자뿐이었다. 권예진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공씨 가문 어르신의 병이 위중해서 내가 치료해주는 조건으로 공호열한테 결혼하자고 했어요.” 장숙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요? 공호열 씨랑 다윤 씨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랬어요?” 권예진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요.”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남은 인생의 행복까지 걸어야 하는데요? 억지로 얻은 건 좋은 결과가 없는 법이에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하기 어려울 텐데. 게다가 공호열 씨는 명성이 자자한 거물이에요. 남자는 이혼해도 괜찮지만 여자는 달라요. 나중에 혹시라도 이혼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때 김홍철과 장옥영이 2층에서 내려왔다. 김홍철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빌어먹을 년아, 호열이한테 결혼을 강요할 재주는 있어도 데려다 달라고 할 배짱은 없어?” 장옥영이 비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공호열이 너 같은 촌뜨기를 쳐다보기나 할 것 같아?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다윤이의 약혼자를 빼앗으려 들어?” 정교한 메이크업으로도 그녀의 심술궂고 매서운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내 주제요?” 마음이 저릿해진 권예진은 몰래 주먹을 불끈 쥐고 싸늘하게 웃었다. “어떻게 친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내 주제가 어떤데요?” 두 사람의 친딸은 사실 권예진이었고 김다윤과는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 태어난 그날 권수경이 권예진을 몰래 훔쳐 갔는데 병원에서는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당일 태어난 다른 여자아이를 그들의 딸이라고 속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바로 김다윤이었다. 친딸인 권예진은 권수경에게 납치되어 성운 마을로 오게 되었다. 조산 때문에 아이를 잃은 권수경은 그 충격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겼고 자기 몸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만약 도교 사원의 사부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권예진이 세 살 되던 해 권수경은 산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로 사망했다. 그 후 사부가 그녀를 도교 사원으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말버릇하고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말문이 막혀버린 장옥영은 다짜고짜 권예진의 뺨을 때리려 했다. 권예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뿌리쳤다. “내가 왜 공호열한테 파혼하고 나랑 결혼하자고 했는지 두 사람이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김다윤이 내 옥팔찌를 훔치지 않았더라면 공호열이 걔랑 결혼하겠다고 했을 것 같아요?” 그녀를 거둬준 도교 사원은 성운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향을 피우는 유명한 곳이었다. 장옥영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2년 전 김다윤이 청림대학교에 합격하자 장옥영은 그녀와 함께 소원을 빌러 도교 사원에 갔었다. 그때 한여름이었는데 김다윤은 우연히 권예진이 팔목에 찬 옥팔찌를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김다윤이 무심코 팔찌에 대해 묻자 그녀는 그 팔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공교롭게도 김다윤과 공호열의 사촌 여동생 공지율은 동창이었고 또 친한 사이였다. 김다윤은 공지율에게서 공호열이 줄곧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예전에 그의 목숨을 구해준 여자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징표로 옥팔찌를 주었다고 했다. 그 옥팔찌는 최애순이 하고 있는 옥팔찌와 한 쌍이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후 김다윤은 권예진의 옥팔찌를 훔쳐 공씨 가문에 접근했다. “내가 네 옥팔찌를 가져간 게 뭐?” 김다윤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옥팔찌 하나 때문에 호열 씨가 너 같은 촌뜨기랑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호열 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야. 그 옥팔찌가 네 것이라고 말한다 한들 믿을 것 같아?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공씨 가문 안주인 자리는 언젠가는 내 것이 될 거라고.” “다윤이 말이 맞아. 넌 어릴 때부터 산에서 자라서 배운 것도 없잖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낭비할 바엔 다윤이한테 주는 게 낫지. 다윤이는 청림대학교의 수재고 호열이랑도 잘 어울려. 우리 집안이 나중에 잘 되면 너도 덕을 볼 수 있어.” 장옥영이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주제도 모르는 것이 어디서 감히 공씨 가문을 건드려, 건드리길.” 김씨 가문은 사실 보잘것없는 가문이었다. 그 옥팔찌 덕분에 김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되었고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승승장구했다. 때문에 공씨 가문을 건드렸다간 결과가 어떨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철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버럭 화를 냈다. “재수 없는 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꺼져. 이 집에서 당장 나가.” 말이 끝나자마자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우미가 권예진의 물건을 모두 내던졌고 옷가지가 바닥에 흩어졌다. 권예진이 짐을 정리하기 전에 검은색 벤틀리가 그녀 옆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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