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현관 앞에서 권예진을 내려다보던 김홍철과 장옥영은 공씨 가문의 차를 보자마자 바로 뛰어나갔다.
장옥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임 집사, 여긴 어쩐 일로 왔어? 혹시 호열이가 우리 다윤이를 데리러 오라고 했어?”
하지만 임길태는 장옥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권예진이 막 정리한 캐리어를 들고 트렁크 쪽으로 걸어갔다.
“집사님.”
권예진이 놀란 얼굴로 따라가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혹시 어르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닙니다. 어르신의 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집사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공손하게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께서 사모님을 오아시스로 모시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김다윤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잘못 안 거 아니에요? 사모님이라니요? 호열 씨가 쟤를 오아시스에 데려갈 리가 없어요.”
오아시스는 공호열의 개인 별장이었고 김다윤조차 가본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공호열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수없이 많았다. 설령 권예진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준다고 해도 굳이 오아시스에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촌뜨기 같은 권예진은 오아시스에 발을 들일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임길태는 김다윤을 무시하고 뒷좌석 문을 열어 공손하게 손짓했다.
“사모님, 타시죠.”
권예진은 안내에 따라 차에 탔다. 마음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임길태가 자신을 해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다윤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다.
“집사님, 오아시스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충고하는데 집사님은 공씨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주인을 대신해서 결정할 권리는 없어요. 나중에 호열 씨의 뜻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면 내가 안주인이 된 후에 제일 먼저 집사님부터 자를 겁니다.”
그러자 임길태가 허허 웃었다.
“김다윤 씨, 그런 말씀은 안주인이 되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확 그냥...”
김다윤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다 새빨개졌다.
벤틀리는 김씨 가문 사람들을 덩그러니 내팽개친 채 권예진을 태우고 떠났다.
“퉤. 공씨 가문의 집사 주제에 폼은 있는 대로 다 내네.”
장옥영은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씩씩거렸다.
“다윤아, 나중에 공씨 가문에 시집가면 저 자식부터 잘라버려.”
“당연하죠.”
김다윤도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권예진, 왜 자꾸 내 앞길을 막는 건데? 너만 없었더라면 난 이미 공씨 가문 사모님이 됐을 텐데. 호열 씨는 모든 여자의 꿈이란 말이야. 너 같은 촌뜨기는 호열 씨랑 어울리지 않아.’
공호열은 지난 몇 년 동안 김다윤을 건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녀가 단둘이 한집에 있다가 만에 하나 권예진이 그를 유혹하기라도 한다면...
‘안 돼. 무슨 수를 써서든 권예진 저 걸림돌을 빨리 치워버려야겠어.’
...
검은색 벤틀리가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었고 네온사인이 수시로 비쳐 들어왔다.
차 안이 희미하게 밝았다 어두워졌다 반복했고 권예진은 왠지 모르게 점점 불안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애써 침착한 척 물었다.
“집사님,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오아시스로 가는 길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진 씨.”
김씨 저택을 떠난 후 임길태는 다시 호칭을 바꿨고 더 이상 그녀를 사모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집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권예진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도련님 사실 나쁜 분은 아니에요.”
“네.”
권예진은 애써 웃는 척했다.
공호열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결혼을 강요했단 이유로 그녀를 혐오하고 미워했다.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예진은 오아시스로 가기로 결심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아야만 지금의 공호열을 알아갈 기회가 많아지고 그해에 있었던 일도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거지? 어떻게 옥팔찌 하나만으로 김다윤이 그때 그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
잠시 후 그들은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에 있던 공호열은 임길태를 따라 들어오는 권예진을 보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얼굴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어두운 분위기가 별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권예진은 임길태의 뒤에서 최대한 존재감을 줄이려고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어요?”
그녀의 옆에 놓인 캐리어를 훑어보던 공호열이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비웃었다.
‘벌써 내 침대에 기어오르고 싶어서 안달인 거야?’
권예진은 그를 빤히 보면서 해명했다.
“집사님을 탓하지 마세요. 내가 김씨 가문에서 쫓겨났는데 당장 갈 곳이 없어서 집사님이 걱정하는 마음에 데리고 온 거예요. 지금 당장 나갈게요.”
한마디 한마디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에 공호열이 짜증 섞인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당장 나가.”
“도련님...”
임길태는 권예진을 대신하여 말하려 했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가로막혔다.
“집사님이 어른인 걸 봐서 이번 한 번만 넘어갈게요. 다음에 또 이러면 다신 이 집에 오지 말아요. 오아시스에 개나 소나 함부로 다 들여도 되는 줄 알아요? 당장 카펫부터 바꾸라고 해요. 더러우니까.”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던 권예진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때 공호열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윤아.”
연인에게만 들려주는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오뚝한 콧날, 무심한 듯한 입술, 늠름하면서도 수려한 멋짐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 대기시켜요.”
김다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공호열은 전화를 끊고 소파 팔걸이에 던져 놓았던 외투를 집어 들더니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해경시의 겨울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추위가 매우 매서웠다. 특히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권예진은 캐리어를 끌고 정원을 걸으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그때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권예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