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공호열이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정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권예진은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깼다.
“분명 병원 가는 길이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죠?”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도우미에게 물었다.
“어제 별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주무셨거든요.”
“그랬군요. 됐어요, 나가봐요.”
권예진은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너무 피곤했던 탓이라 여겼다.
하룻밤 푹 자고 나니 몸 상태가 훨씬 나아져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방 안으로 돌렸다. 넓고 고요한 객실을 둘러보며 깊은숨을 들이켰다.
이윽고 한쪽 구석에 두었던 캐리어를 꺼내 자신의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공호열이 사준 옷이며 액세서리 따위는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이미 이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곳 오아시스에 머무는 것도 더 이상 적절하지 않았다.
짐을 끌고 나오던 권예진은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공호열과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살짝 멈칫했다.
“오늘 회사 안 가요?”
“응.”
공호열은 신문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곧 권예진의 옆에 있는 캐리어로 옮겨갔고 금세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표정 없이 던진 한마디였지만 남자의 얼굴선은 날카롭게 굳어 있었고 입매는 냉정하게 꾹 다물려 있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위압감이 감돌았다.
“당신이랑 결혼하기 싫어졌어요. 그러니까 나가려는 거고요. 이 집에 머무는 건 명분도 없고 적당하지 않잖아요? 제가 철없고 경솔했던 거 잘 알아요. 후회도 하고요. 이제 와서 이런 말 드리는 것도 우습겠지만...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 주세요.”
권예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히 말했다.
“할아버지 진료는 계속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홀하게 굴진 않을 테니까.”
말을 마친 권예진은 더는 공호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캐리어를 끌며 조용히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멈춰.”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들었다.
공호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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