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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괜찮아요. 병실에 휴게실도 있으니까, 거기서 잠깐 눈 붙이면 돼요.” 권예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김정희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저택 마당. 정민욱은 권예진이 저택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차 문을 열며 공손히 말했다. “이 근처는 택시 잡기 어려우니까 제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고마워요.” 권예진은 예의를 차리기보다는 담백하게 대답하며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차가 저택을 벗어나기도 전에, 권예진은 어느새 조용히 잠이 들었다. 정민욱은 룸미러로 그녀를 조심스레 확인한 뒤 살짝 불러보았다. “예진 씨?”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권예진은 이미 깊이 잠든 상태였다. 정민욱은 고개를 돌려 다시 차를 유턴해서 조용히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공호열은 그녀를 안아 들고 객실 안의 커다란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하얀 커튼 사이로 비치는 저녁 햇살이 방 안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그녀는 폭신한 베개 위에 머리를 누이고 있었다.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흩어지고 고운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 그리고 유난히 긴 속눈썹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평온하게 보이게 했다. 마치 천사가 누워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공호열은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커튼을 닫았다. 방 안은 금세 어둠에 잠겼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때 뒤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공호열은 스탠드 조명을 켠 뒤 몸을 숙여 귀를 기울였다. “안 돼... 안 돼...” 권예진은 꿈속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온몸이 불안에 휩싸인 듯, 몸을 떨며 말했다. “도망쳐.... 빨리 도망쳐!” 공호열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떨리는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권예진의 얼굴은 창백했고 온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불이야! 도망쳐! 도망치라고!” 무슨 꿈인지는 몰라도 공호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르듯 아팠다.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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