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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그녀를 지켜준 그의 목소리

우산이 가로등 불빛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심가희는 곽도현의 스쳐 지나간 표정을 끝내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남은 건 오직 낮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뿐이었다. “이따가 온라인 회의 있어서... 위에는 안 올라갈게.” 곽도현은 그녀의 젖은 옷깃을 한 번 더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가희야, 얼른 들어가. 이러다 감기 걸리겠다.” “응. 도현 씨도 운전 조심해요.” 심가희는 우산을 그의 손에 조용히 쥐여줬다. 곽도현은 그녀가 단지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가희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오늘은 어떻게든 가희 마음을 돌려놨어야 했어. 예전엔 가희 생일마다 늘 네 옆에 있었잖아. 유진아, 먼저 저택에 가 있어.” 곽도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을 쓴 채 곽도현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안. 심가희는 16층 버튼을 누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심장은 요동쳤고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왜 또 흔들리는 거야, 나?’ 그러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심가희, 정신 차려! 이미 마음 굳혔잖아.’ 그때였다. “쿵!”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더니 멈춰버렸다. 심가희는 숨을 삼키며 버튼 패널을 올려다봤다. 7층 숫자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지만 제대로 도착한 것 같지 않았다. 초조해진 그녀는 급히 비상 버튼을 눌렀다. 그 버튼은 단지 내 관리실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월희성 관리실입니다.” “안녕하세요, 8동 1라인 16층 주민인데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서 안에 갇혔어요.” 관리 직원은 침착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기술자분께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보통은 관리기사들이 먼저 상황을 확인한 뒤, 필요하면 구조대에 연락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심가희에게 처음이었다. 며칠 전 우연히 뉴스에서 봤던 엘리베이터 사고가 떠오르자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녀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냈고 신호는 간신히 두 칸 남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곽도현의 번호를 눌렀다. 지금 연락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목소리가 그저 듣고 싶었다. 예전에도 힘들 때면 늘 곁에서 위로해주던 사람이니까.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결국 기계음으로 바뀌었다. ‘...온라인 회의라 그랬지.’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엘리베이터 안은 그녀의 불안을 점점 키워갔다. 쿵! 천장에 달린 백열등이 몇 차례 깜빡이더니,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발끝이 붕 뜨는 듯한 느낌에 심가희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꺄악!” 쿵! 거친 충격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심가희는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벽면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발... 빨리 와주세요...’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던 그때였다. “심가희?” 밖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수리 기사님! 저 여기 있어요. 안에 갇혔어요!” 관리실에서 연락처를 확인했을 테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문제가 심각한가요? 언제쯤 나갈 수 있나요?” 다급하게 묻는 그녀에게 돌아온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잘 들어. 지금 기술자 곧 올 거야. 그 전까진 내 말 잘 따라.” 밤이라 관리 기사들은 이미 퇴근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낯선 사람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호흡을 천천히 하고 손잡이를 꼭 잡아.” 심가희는 조심스레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고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릎은 살짝 굽히고 발끝을 들어. 등과 머리는 벽에 꼭 붙여.”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 하며 몸이 조금씩 진정되었고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기술자 올 때까지 옆에 있어주실 수 있을까요?” 밖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여기 있을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성함 여쭤봐도 될까요? 이렇게 도와주신 거, 꼭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그때,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계신 분, 16층 심가희 씨 맞으시죠?” 드디어 기술자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십여 분 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여성 관리 직원이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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