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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서로의 본능에 따라 욕구를 충족한 것뿐

분명 어젯밤 입구에서 곽지환을 만났었는데, 몸에 힘이 없어서 쓰러지려 할 때 잡아준 이도 곽지환이었는데, 자신에게 약을 먹여주던 곽지환의 모습이 이리도 선명한데 왜 지금 집 안에 있는 이는 곽도현인지 심가희는 의아하기만 했다. 이미 모든 연락처를 차단한 상태인데 자신이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제 너 열나서 체온도 여러 번 측정했었어. 다행히 아침 되니까 좀 내리더라.” 곽도현은 끓여온 죽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는 손을 심가희 이마에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호의를 받을 생각이 없었던 심가희는 고개를 홱 돌리며 다른 곳을 응시한 채 말했다. “이제 간호 안 해줘도 되니까 그만 가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내치는 심가희에 곽도현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장모님 일로 화내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몸은 챙겨야지. 연락처랑 카톡 다 차단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 형이 전화 안 해줬으면 난 너 아픈 것도 몰랐을 거야. 너 아직 다 안 나았어. 내가 좀 더 옆에 있어 줄게.” 곽도현의 말에 심가희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지환... 오빠가 연락했다고요?” 역시 심가희의 기억대로 곽지환이 그녀를 집에 데려오고 약까지 먹인 게 맞았다. ‘오빠는 왜 곽도현한테 연락한 거지? 왜 하필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한테...’ “바쁜 일 있다던데 아마도 너랑 거리 두려고 그러는 것 같았어. 이런 일엔 약혼자인 내가 나서야지.” 심가희의 눈에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곽도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곽지환뿐이었다. 바쁘다, 거리를 둔다는 그 말들에 심가희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오다가 또 얼음물에 빠진 것마냥 가슴이 시려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치 곽지환에게도 자신은 그저 불필요하고 귀찮은 존재인 것 같았다. 전에는 곽지환에게 혹시 자신을 보기라도 하면 아는 척도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신신당부까지 했건만 이제 와보니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날 밤은 그저 서로의 본능에 따라 욕구를 충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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