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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9시. 아파트 앞에 도착한 주설아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이하음에게 전화를 걸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하음은 평소보다 더 늦게, 9시 20분이 다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말이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진태하가 이하음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정말 내가 발목 안 봐줘도 돼요?” 이하음이 다리를 절뚝이게 된 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나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발을 삐끗했기 때문이다. “10분 뒤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요.” 이하음이 이를 꽉 깨문 채 통증을 참으며 말하자 진태하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 누가 밥 먹고 화장하는데 30분이나 쓰래요? 중요한 미팅이 있으면 좀 빨리빨리 준비하지.” 이하음은 그 말에 볼을 부풀리며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밥 먹는데 앞에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으면 내가 밥이 넘어가겠냐고! 그리고 화장할 때 보기는 왜 봐?’ 그녀는 남자의 시선을 받은 채로 밥을 먹은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고 남자 앞에서 화장하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 자기 탓인 줄도 모르고!’ 구시렁거리며 차량 쪽으로 다가가 보니 포니테일을 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주설아가 보였다. 주설아는 두 사람을 보더니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며 대뜸 진태하에게 한 소리 했다. “진태하 씨는 배려라는 걸 할 줄 몰라요? 처음부터 그렇게 몰아붙이면 어떡해요?” “네? 뭘 몰아붙여요?” 진태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모른 척하기는.” 이하음의 옆으로 다가간 주설아는 혀를 차며 얼른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하음아, 그냥 오늘은 집에서 쉬는 거 어때?” 이하음은 얼굴이 빨개진 채 주설아를 노려보았다. “계단에서 내려오다 발목을 삐끗한 것뿐이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네네, 그러시겠죠. 이따 약국에서 진통제 사다 줄게.” 주설아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젊은 남녀가 한 지붕 아래서 아무 일도 없이 하룻밤을 보낼 리가 없었으니까. 이하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습관적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런데 주설아가 다시 닫으며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뒤에 타야지.” 주설아는 말을 마친 후 뒷좌석 문을 열고 이하음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진태하까지 올라탄 것을 확인한 주설아는 운전석에 오르며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 “꽉 잡아요. 미팅에 늦지 않으려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니까.” 이하음이 시선을 내려 발목 쪽을 바라보았다. 그 잠깐 사이에 아주 퉁퉁 부어버렸다. 진태하는 고통스러워하는 이하음의 표정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상태인지 한번 봐줄게요. 뼈가 잘못 맞물린 거면 제때 치료해야 하니까.” 그는 말을 마친 후 이하음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다리를 번쩍 들어 자신의 다리 위에 내려놓았다. 진태하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을 매만지고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아프니까 살살해줘요.” 이하음은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픈 와중에도 치마가 올라가지 않게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룸미러로 그 장면을 본 주설아는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정말 삐끗한 거였어?” “그렇다고 말했잖아!” 이하음이 주설아를 째려보며 답했다. “나는 당연히... 하하하.” 주설아는 머쓱하게 웃고는 다시 운전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태하는 이하음의 하이힐의 벗긴 후 한 손으로 발목을 잡고는 천천히 돌렸다. 양말을 사이에 두고 있기는 했지만 이하음은 진태하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부터 뼈를 다시 맞출 거예요. 아플 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참아봐요.” 진태하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이하음의 발을 꽉 쥐었다. 이하음은 두려운 듯 치마를 더 세게 쥐었다. “살살해줘요. 제발...” “셋 셀 테니까 마음의 준비해요.” “네.” 이하음은 심호흡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나. 둘.” 뚜둑. 청량한 뼈 소리와 함께 진태하의 손 위치가 바뀌어버렸다. 셋을 다 세지도 않고 손을 움직여버린 것이었다. ‘둘밖에 안 세놓고 이렇게 갑자기 움직여버리면 어떡해...’ 이하음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진태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자, 이제 움직여 봐요.” 진태하가 발을 놓아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하음은 그 말에 얼른 발을 거두어들이고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라...?’ “안 아파요... 안 아파요!” 이하음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태하는 그 말에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더니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시트에 기대 눈을 감았다. 강북도, 화양 테크 자회사. 이하음은 회사에 도착한 후 진태하와 주설아를 데리고 얼른 회의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책상 위를 정리하고 있는 직원밖에 없었다. “양 대표님은요?” 이하음이 물었다. “전화 한 통을 받으시고는 그대로 가버리셨어요. 저희와 맺었던 계약을 전부 다 취소할 거라고 하시면서...” 이하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계약을 취소한다 했다고요...?” 양 대표의 회사는 화양 테크의 중요한 거래처 중 하나로 이제껏 화양이 큰 신세를 지고 있었던 회사였다. 그런데 그간 잘 협력해 왔던 회사가 갑자기 모든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갑자기 왜? 내가 미팅에 늦어서?’ 주설아는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이하음의 어깨를 두드리며 멘탈을 잡아주었다. “양 대표님은 우리랑 오래 거래해 온 분이잖아. 정말 취소할 생각이었다고 해도 우리한테 먼저 연락을 해줬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양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사과부터 해.” 이하음은 그 말에 얼른 휴대폰을 꺼내 양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이 가고 얼마 안 가 전화가 뚝 끊겨버렸다. 다시 걸어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이하음은 톡으로 들어가 양 대표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좀처럼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차단했나 봐...” 이하음이 빨개진 눈으로 주설아를 바라보았다. “뭐? 양 대표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미팅에 조금 늦은 거로 계약을 취소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차단이라니...” 그때 의자에 앉아 있던 진태하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간 건 아닐까요?” 이런 짓을 할 만한 후보군을 살펴보면 일단 제일 가까운 이혜정 일가가 있고 두 번째로는 황씨 가문의 도련님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롤스로이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 ‘롤스로이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보고 있던 게 하음 씨가 아닌 나일 수도 있긴 하지만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는 게 좋으니까.’ “최영훈...” 이하음의 입에서 최영훈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최영훈은 양재 그룹의 투자자야. 최영훈이 양 대표님한테 뭐라 얘기한 게 틀림없어!” 최영훈은 최씨 가문의 후계자로 소위 말하는 재벌 2세이며 이혜정의 남자 친구다. ‘이혜정이 최영훈을 찾아가서 부탁한 거야. 그래서 최영훈이 양 대표한테 전화해 우리 회사와 맺었던 모든 계약을 다 취소하라고 압박을 넣은 거야.’ 이하음은 화양 테크를 궁지로 몰아가려는 사촌 언니의 행동에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대표님, 이혜정 씨께서 오셨어요.” 회의실에 있던 직원이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날 생각 없으니까 가라고 해요.” 이하음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혜정이 어떤 말을 할지 안 봐도 뻔했기에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주지 그래요? 피하면 피할수록 점점 더 기세등등해져서 하음 씨를 자기 아래로 볼 거예요.” 진태하가 다리를 꼬며 가벼운 말투로 얘기했다. 이하음은 그 말에 조금 머뭇거리더니 주설아를 바라보았다. 이하음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화양 테크 자회사의 총책임자를 맡아왔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일한 지도 이제 2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평소 부모님께 자주 조언을 듣곤 했다. 그러다 주설아가 회사로 온 뒤로는 뭐든 주설아와 함께 토론하고 또 결정했다. “태하 씨 말이 맞아. 피하면 할수록 널 점점 더 얕잡아보기만 할 거야. 이럴 때일수록 더 어깨를 펴고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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