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7장 민서희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겁에 질려 있다 의아해진 중기는 박지환의 안색을 이상하게 여겼다.
대표님이... 정말 수술실 안에 있는 민서희 씨를 사랑하는 건가?
부하가 자신의 명을 어긴 것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민준을 대신에 죄를 짊어질 결심을 할 때 당파에서 쫓겨날 준비마저 했었던 것이다.
오랜 침묵 속에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오자 중기가 반응하기도 전에 박지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됐어요?”
그의 절박함을 보자 의사 선생님의 화가 절반 이상 풀린 듯했다.
“당신이 환자의 남편이에요? 어떻게 자기 아내더러 그리 서늘한 곳에 두 시간 동안이나 무릎 꿇고 있게 할 수가 있어요? 다행히 전에 몸보신을 잘했어서 그렇지 안 그러면 신선이 와도 구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효도도 한계가 있어야지 어떻게 임산부한테 무릎을 꿇게 해요!”
중기는 숨을 몰아쉬며 의사를 제지하려 했는데 박지환이 불쑥 말을 건넸다.
“알겠어요.”
순간 중기는 내디딘 발을 거둘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박지환이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자 목소리도 적잖이 온화해졌다.
“아기와 임산부 모두 목숨을 건졌어요. 다만 수술 과정에서 가벼운 마취제를 투여해 지금은 자고 있으니 간호사가 병실로 옮기게 되면 누구도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놔두세요.”
의사가 떠나자 간호사가 민서희를 병실로 옮겼다.
박지환은 따라갔더니 침상에 누워있는 민서희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 없었고 머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데다 허약하고 가련한 자태는 박지환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 느낌을 받게 했다.
뒤늦게 박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이 아픈 건가? 민서희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고?
이건 너무 우습지 않아?
그 여자의 악랄함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는데 미쳤다고 어머니를 죽인 원수한테 연민을 느끼는 거라고?
이건 민서희 뜻대로 이루어지는 거잖아?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오르는 박지환은 병실을 뛰쳐나갔다.
“대표님?”
중기는 박지환의 이상한 행동을 물으려 이민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고민을 하던 도중 고개를 들어보니 박지환이 병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말을 건네려는데 박지환은 보기 흉한 안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중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안에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희한하네! 아직 안 깨어났잖아!
그럼 대체 누가 박지환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곧이어 간호사가 들어와 주사를 놓았고 민서희는 매우 마른 탓에 혈관을 찾기가 쉬웠다. 간호사는 떠나기 전 중기한테 약물을 잘 지켜보라고 당부해 놓았다.
옆에 앉아 있는 중기는 민서희는 입술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궁금해진 중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민서희 얼굴로 향해 그녀의 입에 귀를 대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앞에 나타난 박지환은 중기의 행동을 본 순간 눈빛에 분노가 스쳤다.
“뭐 하는 거야!”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중기는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빠질 뻔했다.
“민서희 씨가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제대로 들리지가 않기도 하고 물을 마시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 근데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설명을 들은 박지환의 얼굴은 점차 누그러들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한기가 맴돌았다.
“저런 여자는 멀리해야 돼.”
중기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여자? 어떤 여자? 당신은 나보다 더 가까이 갔으면서?
그는 박지환의 손에 들린 물건에 시선을 옮겼다.
“대표님, 뭘 가지고 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