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2장 나를 받아줄 거예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박지환은 복잡한 눈빛이 스치며 내식을 하지 않고 그녀를 밀쳤다.
“괜한 속임수를 쓰는 거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나 그는 끝내 민서희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고 돌아섰다.
한 발짝만 더 가가가면 민서희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호진은은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그치면 박지환이 오히려 의심을 할 것이다. 필경 백인언의 최면술로 박지환이 완전히 이성을 잃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호진은이 따라나서자 박지환은 멀지 않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박지환은 언짢은 어조로 물었다.
“민서희 앞에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결혼할 거라고 했어요?”
“그게...”
호진은은 미리 변명을 준비해 놨었다.
“민서희 씨를 빨리 단념시키고 싶었어요. 내가 병실로 들어가니까 지환 씨가 자기 뱃속의 아기를 신경 쓰고 있다면서 도발을 계속하는 거예요. 심지어 여사님을 죽인 자신한테 지금은 지환 시가 그저 분풀이를 하는 정도이고... 금방 용서해 줄 거라고 하면서요.”
“그런 말을 했어?”
박지환의 얼굴에 한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호진은이 더욱 놀란 건 박지환이 자신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럼요. 지환 씨, 나 못 믿어요? 아까 민서희 씨가 병실에서 나한테 얼마나 많은 누명을 씌웠는지 직접 들었었잖아요.”
호진은은 억울한 척했다.
“당신 앞에서 내가 약을 탔다고 하는 사람이 뭔들 얘기하지 못하겠어요?”
박지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호흡이 무거워져 어두운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호지은은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환 씨... 이제는 내 마음을 알겠어요?”
“비록 화가 난 마음에 지환 씨가 날 사랑하고 결혼도 할 거라고 했다고 한 건 맞는데 저도 사실은 지환 씨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하고 결혼하면 강한 집안끼리 합치는 거고 저도 사업상에서 지환 씨를 많이 도울 수 있잖아요. 겓가더 중요한 건...”
백인언이 박지환에게 심은 암시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비록 박지환이 그녀한테 일말의 감정이 없었던 건 맞지만 최면을 통해 점차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민서희가 떠나면 박씨 집안 사모님 자리는 무조건 그녀의 몫일 테니 말이다.
“지환 씨. 날 좀 봐봐요. 나한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거예요?”
그 말에 몸이 굳어진 박지환은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은 없다였으나 호진은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왜 호진은을 거절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박지환의 갈등을 알아차린 호진은은 한걸음 더 다가가 그의 건장한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어린 여인처럼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지환 씨. 지환 씨는 민서희 씨한테 그저 습관이 돼서 그래요.”
“민서희 씨 존재가 익숙하고 또 자신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으니 어찌 됐건 잘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하지만 여사님이 어떻게 사망한 건지 잊으면 안 되죠.”
“이토록 피 묻은 원한이 있는데 지환 씨가 자기를 죽인 원수와 함께 있는 걸 여사님이 하늘나라에서 보시게 되면...”
호진은은 말을 잇지 않았지만 박지환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
호진은은 그의 내면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장면을 파헤칠 작정이었다.
어제 민서희한테 그러한 충동을 느꼈다니... 어떻게 악독한 살인범한테...
“그래요.”
호진은은 잠시 멍해지며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환 씨... 그래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