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6장 박지환 씨 미안해요
“여기에 남게 되면 그 누구도 민서희 씨를 지켜줄 수 없어요.”
이민준이 말을 건넸다.
“서 의사가 일주일 전에 저한테 전화를 걸어 대표님을 잘 살피라고 했었어요.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 걸 예감한 사람처럼 절대 대표님이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어요.”
민서희가 서둘러 물었다.
“이준 씨 어디에 있어요?”
이민준은 난감했다.
“그 후로 통화가 끊겼어요. 제 생각엔...”
“아무튼 지금은 저 말고 누구도 민서희 씨를 구출해 낼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의 손이 해외로 뻗칠 줄 몰랐던 민서희는 이민준의 추측에 경악하며 이를 한사코 깨물었다.
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민준 씨 때문에라도 제가 도망가면 안 돼요. 제가 이민준 씨 발목을 잡으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이민준 씨는 자유의 몸이니까 저를 도와 외부와 연락할 수도 있고요. 괜히 나중에 사고가 생겨 이민준 씨가 당파에 감금돼 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돼요.”
“민서희 씨...”
민서희는 마음을 굳혔다.
“돌아가요. 곧 있으면 박지환 씨가 돌아올 시간이니까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고 막 거실로 들어오자 왕씨 아주머니는 긴장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민서희 씨, 돌아온 거예요? 잘했어요... 저는 그 분이랑 도피한 줄 알았잖아요.”
민서희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도피할 게 두려우면 왜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어요? 박지환 씨가 원망할까 두렵지도 않아요?”]
“두렵죠.”
솔직하게 말을 내뱉은 왕씨 아주머니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근데 여기에 있으면 기분이 꿀꿀하니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아서 그랬죠. 대표님이 아무리 화가 나봤자 절 죽이기야 하겠어요.”
예상외의 대답에 민서희는 멈칫했다.
그녀는 어느새 장씨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장씨 아주머니도 늘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줬었는데 아마도 민영매의 수작으로 떠나게 됐던 것 같다.
결국은 그녀 스스로 민영매를 찾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픈 민서희는 베란다로 나가 찬 바람을 쐬고 있었다.
박지환은 언제 위층으로 올라온 건지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민서희가 혼자 베란다에 있자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는 앞으로 걸어가며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고 말투는 여전히 강경했다.
“또 불쌍한 척하려고?”
“어제는 허리통증으로 핑계를 삼더니 오늘은 감기에 걸려볼 셈이야? 이렇게 자기 몸을 괴롭힌다고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아무 답도 하지 않은 민서희는 박지환의 품에 안겨 힘없이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댄 채 머리를 묻었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박지환은 어리둥절해졌다.
민서희의 애정 어린 행동에 어쩔 바를 몰랐던 것이다.
그는 민서희가 줄곧 차가운 표정으로 임할 줄 알았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는 그녀의 턱을 들어 표정을 살폈다.
“술 마셨어?”
술 마신 게 아니면 왜 주동적으로 그에게 다가오겠어?
민서희는 여전히 눈을 감고 속눈썹을 떨며 건장한 그의 체온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허리를 감쌌다.
“박지환 씨. 추워요. 꽉 안아줘요.”
그녀의 애교 섞인 말투에는 허약함이 묻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더 힘껏 안은 박지환은 불만스레 말을 건넸다.
“추운데 왜 베란다에 서 있어?”
그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 창문을 닫았고 그녀의 손을 만졌더니 역시나 온도가 없고 차가웠다.
민서희는 머리를 그의 가슴이 더 가까이 기대었다.
“그냥 바람을 좀 쐬어야 정신이 맑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박지환은 빈정거렸다.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 아니었어? 근데 정신이 맑아서 뭐 하게?”
“아니에요...”
민서희는 그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일찍 알았더라면...”
“박지환 씨,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