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7장 임진이 바로 당신이에요
박지환은 몸이 굳어버렸다.
민서희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눈에는 붉은 기운이 보여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박지환은 심지어 그녀의 얼굴에서 약간의 빛과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연민?
박지환은 불쾌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여자한테서 불쌍하게 여겨졌던 거야?
그는 외면했다.
“민서희.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마.”
그렇게 되면 그는 이해할 수도 없고 불안해지게 된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어머니를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내 용서를 바라는 거라면 이미 늦었어. 어머니는 사망했고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야.”
“알아요.”
민서희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당신의 용서를 바라는 거 아니에요. 다 내가 잘못했어요.”
박지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축 늘어진 눈매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녀가 인정했어? 다 인정했어?
은서경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이를 악물고 고집을 피우던 그녀가 오늘은 그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고?
어느새 박지환은 민서희의 허리를 힘껏 짚으며 위협적인 어조로 말을 건넸다.
“민서희, 사과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아니까 절대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민서희는 심호흡을 하고 박지환의 목을 껴안았다.
“다시는 안 떠나요.”
“평생 당신 옆에 붙어있을게요.”
그녀의 다정한 행동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박지환은 머릿속에 혼란이 생기며 이토록 적극적인 그녀를 밀어내기가 아쉬웠다.
그러니 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부터는 술 마시지 마. 아기한테 안 좋아.”
“그래요.”
민서희는 설명하지 않고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지환 씨. 나 피곤한데 침대로 부축해 줄 수 있어요? 쉬고 싶어요.”
몸이 뻣뻣해졌으나 그녀를 껴안고 침대로 데려간 박지환이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민서희는 그의 몸을 낚아채 아래로 눌렀다.
그녀와 아기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감히 움직이지 못하던 박지환은 이 기괴한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비아냥거렸다.
“민서희, 이젠 이런 유혹마저 쓰는 거야?”
민서희는 그한테 입맞춤을 하지 않고 머리를 그의 몸으로 다가갔다.
“지환 씨, 한마디만 물어볼 거니까 대답해 줄래요?”
그녀가 취한 줄 아는 박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서희는 개의치 않아 하며 첫 물음을 던졌다.
“임진 씨... 라고 알아요?”
“임진?”
듣자마자 남자 이름이라는 걸 알아챈 박지환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말투가 이상야릇해졌다.
“또 너하고 뒹군 남자야? 대체 남자가 몇 명이야?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토록 미련을 못 버려?”
웃음이 터져 나온 민서희는 눈가가 젖어버렸다.
“그래요. 엄청 중요한 사람 맞아요. 뱃속의 아기가... 그 사람 아기거든요.”
순간 온몸이 뻣뻣해지니 박지환은 민서희의 턱을 움켜쥐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마에 핏줄이 솟아오르고 머릿속이 새하얗기만 한 그는 이를 갈며 물었다.
“뭐라고?”
“뱃속의 아기가 그놈 아기라고?”
배신당한 분노가 몰려와 얼굴이 차갑게 변한 박지환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민서희는 그의 팔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기억 안 나요!”
박지환은 그녀의 눈물을 보자 어리둥절해졌다.
“뭐가 기억이 안 난다고 이러는 거야?”
“임진은 당신이잖아요! 당신이 임진이라고요! 아기도 당신 아기고 임진하고 당신은 같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