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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이나연에겐 그 남자뿐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이나연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딸 박소윤을 안은 채 응급실로 뛰어갔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진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지금 그녀는 그 사실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고 머릿속엔 단 하나뿐이었다. ‘제발... 우리 소윤이한테 아무 일 없어야 해.’ 박소윤의 상태는 심각했고 의사는 간단한 검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아이를 응급수술실로 보냈다. 이때 이나연도 산통이 점점 심해졌고 곧 출산할 것 같아 지금 당장이라도 분만실로 가야 했다. 하지만 박소윤의 곁을 지켜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만 두고 분만실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나연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남편 박재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병원에 좀 와줄래? 소윤이가 교통사고 났는데 상태가 심각해. 나도 곧 애 낳을 것 같아. 제발 소윤이 좀 부탁할게...” “언니, 재혁 오빠 지금 샤워 중이야... 오빠도 참, 언니가 곧 출산하는데 매일 밤 나한테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구나.” 들려온 건 박재혁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이나연과 실제로 혈연관계가 없는, 법적으로만 ‘동생’인 이가희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이나연은 손이 떨려서 하마터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박재혁이랑 이가희가 같이 있었구나... 지금 박재혁이 샤워 중이고 둘이 매일 밤 만났다니...’ 그도 그럴 것이 박재혁이 그 여자와 자지 않았으면 이가희가 임신했을 리가 없다. 이나연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정을 억지로 삼키며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가희, 박재혁 바꿔! 난 내 남편한테 전화한 건데 누가 너더러 받으래? 잊지 마, 박재혁은 네 형부야!”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딸 박소윤이 위급한 상태로 응급실에 들어갔고 이나연은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 전화를 받은 게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 다른 여자라니. “누가 전화했어?” 이가희는 불룩한 가짜 배를 살짝 쓸어내리며 입꼬리를 올리고 이나연을 더 자극하려고 입을 열려 했는데 마침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서 토한 박재혁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언니야. 소윤이가 교통사고 났대. 오빠, 가서 소윤이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가희는 일부러 다급한 척 연기했다. 하지만 ‘소윤’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원래도 차가웠던 박재혁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박소윤은 내 아이도 아닌데 걔가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박재혁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이가희의 손에서 휴대폰을 확 낚아챘다. 그러고는 차디찬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나연,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꺼져!” “제발 병원에 와줘. 나 지금 정말 너무 아파. 나 곧...” “아프다고?” 이나연이 말을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박재혁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나연, 넌 나를 배신하고 남의 자식을 낳았어. 그리고 가희를 다치게 했지. 너 같은 년은 죽어도 싸!” 말을 마친 그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통화가 끊긴 순간 이나연은 벽에 기댄 채로 바닥으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강한 진통이 또다시 느껴지고 다시 한번 피가 흘러내렸는데 그녀는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이나연은 무려 10년 동안 박재혁을 사랑했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전부 그에게 바쳤다. 박재혁이 무너질 때 이나연은 그의 곁을 지켰고 그가 다시 일어설 땐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말이 고작 죽어도 싸다니?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고 눈앞이 흐려졌다. 박재혁은 박소윤이 자기 딸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나연에게 남자라곤 평생 박재혁밖에 없었다. 박소윤이 그의 딸이 아니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재혁은 이나연을 미워했고 복수하려고 이가희와 잠자리를 가졌다. 이나연은 그에게 모든 걸 줬는데 그는 되레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듯 짓밟았다. 그때 응급 수술실의 문이 열렸고 이나연은 당장 달려가서 의사에게 그녀의 딸은 어떻게 됐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나연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눈앞이 까매지더니 바닥에 툭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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