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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언니, 아들을 낳아줘서 고마워

이나연은 통증 때문에 눈을 떴다. 첫째 때 난산이라 힘들었던 기억이 또렷했는데 의사는 둘째는 좀 수월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믿었던 자신이 바보였다. 이번 출산은 첫째 때보다 훨씬 더 아팠고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 끝에 겨우 아이를 낳았을 땐 말 한 마디 뱉을 기운조차 남지 않았다. 이나연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고 마치 뼈까지 녹아내린 것처럼 손끝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장 먼저 딸 박소윤이 생각났고 아이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분만실 문을 겨우 빠져나온 순간, 의사의 긴박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박소윤 보호자 계세요?” “저예요! 제가 보호자예요!” 이나연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의사에게 다가갔다. “제 딸, 지금 어때요?” “박소윤 환자가 사라졌습니다! 보호자 분은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아이가 지금 산소 호흡기를 뗀 채 병실에서 나갔다고요! 지금 상태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뭐라고요? 소윤이가 없어졌다고요?” 이나연은 흥분해서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실에 있었잖아요! 어떻게 그 사이에 애가 없어질 수가 있어요?” 의사는 이나연의 하얗게 질린 얼굴과 축 늘어진 몸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산모시죠? 방금 출산하신 것 같은데... 남편 분은요? 딸은 교통사고 당하고 본인은 출산인데 남편은 안 왔나요?” “저...” 이나연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끝내 눈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남편 박재혁은 지금 그녀의 동생과 함께 침대 위에 있으니까. 의사는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봐온 듯 아무 말 못 하고 고개 숙인 이나연의 표정만 보고도 그녀의 남편이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대충 짐작한 듯했다. 그래서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산모도 몸이 안 좋으시니까 먼저 안정을 취하세요. 그리고 가족한테 연락해서 따님을 찾아보라고 하세요.” 하지만 이나연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손에 있는 휴대폰을 꾹 움켜쥐었다. ‘가족...’ 그녀에겐 부모님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는데 이씨 가문에서 주워서 키워줬다. 어릴 적엔 이가희는 이나연의 장난감을 뺏고 친구를 뺏곤 했었는데 이젠 남편까지 뺏어갔다. 쓴웃음을 짓던 이나연은 결국 박재혁의 번호를 눌렀다. “소윤이가 없어졌어. 제발 좀 도와줘. 의사 선생님께서 소윤이 지금 상태론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이번엔 박재혁이 직접 전화를 받긴 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에게 있어 이나연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남자에게 몸을 준 여자였고 박소윤은 이나연의 ‘배신’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그 사실만 떠올라도 박재혁은 이나연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그녀를 도와 박소윤을 찾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아이의 맑은 얼굴과 그를 향해 망설이며 ‘아빠’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떠오르자 박재혁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서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는 박소윤의 존재를 눈앞에서 지우고 싶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며 이가희가 나왔다. 그녀는 부하에게 전화해서 뭔가를 지시하고 나왔는지 한껏 흡족한 표정이었고 다가와 뒤에서 박재혁을 안았다. “오빠,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일찍 자.” 박재혁은 차갑게 그 말을 남긴 채 그녀를 툭 밀어내고는 차 키를 챙겨 방을 나섰다. 그는 여전히 이가희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나연을 자극하려고 그녀 앞에서 연기할 때만 이가희에게 살짝 부드러워졌을 뿐이었다. 문이 닫히자 이가희는 손으로 가짜 배를 꽉 움켜쥐었고 눈빛에 독이 차올랐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고 그저 쇼하는 것이지만 이나연은 진짜였다. 조금 전, 이가희는 이나연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나연, 나 대신 아들을 낳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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