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눈이 멀다
“가희야!”
박재혁은 계단 아래로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이가희를 품에 안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가희야,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하지만 이나연은 차가운 바닷속에 떨어진 소윤이와 창밖으로 던져진 둘째 아이를 생각하자 이가희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지금 눈앞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이가희를 봐도 분노는 전혀 가시지 않았고 이나연은 휘청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다시 한번 이가희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이나연, 너 진짜 미쳤어?”
박재혁은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너 가희의 애를 죽여 놓고는 왜 또 가희를 괴롭혀? 넌 죽어 마땅한 여자야!”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그건 내 아이야! 내 애를 이가희가 창밖으로 던졌다고!”
이나연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거의 절규하듯 소리쳤다.
“소윤이도 이가희 때문에 죽었어! 난 저년을 반드시 죽여야 해. 내 아이들을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하겠어!”
하지만 박재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상처투성이가 된 이가희를 품에 꼭 안고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넌 진짜 미쳤어. 제정신이 아냐.”
바로 그때 이가희가 비명을 질렀다.
“재혁 오빠, 어디 있어? 여기가 왜 이래? 왜 갑자기 이렇게 어두운 거야? 나 아무것도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그녀는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울부짖었다.
“아! 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오빠, 나 눈이 먼 거야?”
이가희는 그렇게 눈이 멀었다. 의사는 그녀의 각막이 심하게 손상됐고 이식받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기증자를 찾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박재혁은 이나연의 손목을 붙잡고 수술실 앞에 끌고 갔다.
“이 여자의 각막을 써요. 자기가 저지른 죄를 자기 손으로 직접 갚게 해야죠.”
이나연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은 곧 비참한 웃음으로 번졌다. 그는 자신의 두 아이를 죽인 장본인을 위해 그녀의 각막을 뜯어내려고 한다.
이 순간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다는 말도 이나연의 절망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절대 안 돼. 내 각막을 이가희한테 줄 수 없어. 쟤 때문에 소윤이가 죽었고 우리 아들도 수술실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어. 이가희는 눈이 멀어도 싸!”
“넌 정말 끝까지 뻔뻔하구나.”
박재혁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차갑게 말했다.
“만약 가희랑 우리 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네 눈이 아니라 네 목숨까지도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이나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수술실 안의 의료진은 이미 이가희에게 매수된 상태였고 결국 그녀는 강제로 수술대에 눕혀졌다.
박재혁은 수술실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눈빛이 어둡고 복잡했다. 그는 몇 번이나 수술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이번 수술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나연이 박소윤을 찾기 위해 그들의 아이를 버리고 이가희의 아이까지 죽였다고 믿고 있었기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끝끝내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박재혁의 눈에 이나연은 악마 같은 여자였고 그는 그런 여자 때문에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결국 눈이 먼 건 이가희가 아니라 이나연이었다.
의사들은 이가희에게서 뒷돈을 받았고 그녀가 멀쩡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나연의 각막을 강제로 떼어주었다.
이제 이나연의 세상은 빛도 색도 잃었고 칠흑 같은 어둠만 남았다.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다신 빛이 스며들지 못할 것 같았다.
그 후 이나연은 박재혁에게 감금되었고 한때 ‘집’이라 부르던 그 공간은 이젠 철창 없는 감옥이 되었다.
시력을 잃은 후 이나연은 청각이 유난히 예민해졌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누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