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화

서울시의 황태자라 불리는 권도현은 엄격하고 냉정한 성격으로, 스스로 세운 규칙을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도 유독 예외로 허락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윤서아였다. 사람들은 권도현이 윤서아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고 자신의 규칙을 깰 수 있는 남자이며 그녀가 그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윤서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의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권도현에게 진짜 예외는 이미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예외는 권도현이 후원하는 대학생, 김하린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새벽 세 시 반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늘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하던 권도현은 모든 일정과 계획을 깨뜨리고 밤을 새워 김하린과 함께 일출을 보러 갔다. 반면 윤서아는 어머니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느라 귀가가 조금 늦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방에 감금되는 벌을 받아야 했다. “서아야, 이건 규칙이야. 난 널 사랑하니까 더더욱 눈감아줄 수 없어. 이 벌은 네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거야.” 그 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였다. 또한 권도현은 집 안에 냄새가 나는 음식은 절대 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하린이 거실에서 청국장을 먹고 있어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현 오빠, 한 번만 드셔보세요. 냄새는 좀 그런데 맛은 진짜 괜찮아요.” 결벽에 가까운 성격의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결국 숟가락을 들었다. 반대로 윤서아가 집에서 고추장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권도현은 그것을 단호하게 치워버렸다. “서아야, 매운 거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앞으로 집에는 고추 같은 건 들이지 말자. 말 잘 들어, 네 몸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그러나 김하린 앞에서는 또 달랐다. “저 코스프레 행사... 한번 가보고 싶어요.” 권도현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분주히 움직였다. 행사가 열리는 센터 전체를 통째로 빌렸고 김하린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직접 분장해 그녀와 함께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윤서아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도현 씨, 이번에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있는데요. 같이 가줄 수 있어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안 돼, 콘서트장은 사람도 많고 위험하거든. 그런 곳은 내가 곁에 있어도 널 완전히 지켜줄 수 없어. 정말 보고 싶다면 시간 될 때 가수를 집으로 불러서 따로 공연해 달라고 할게.” 윤서아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정말 그렇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된 건 콘서트 현장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권도현과 김하린의 모습이었다. “축하합니다! 두 분 커플 키스 챌린지 성공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이내 질문이 이어졌다. “남자분, 보기엔 사업하시는 분 같으신데 어떻게 시간을 내셔서 여자 친구랑 콘서트에 오신 건가요?” 대형 스크린 아래에서 권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친구가 행복한 게 저한테는 일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관객석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자 김하린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남자 친구는 아니에요.” 권도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내가 더 노력해야지.” 투정을 부리는 김하린과 그것을 웃으며 받아주는 권도현... 그 장면 앞에서 윤서아의 가슴은 서서히 조여 들었다. ‘아... 이게 도현 씨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얼굴이구나.’ 김하린은 권도현 앞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그 어떤 규칙에도 가로막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과거, 김하린이 아무렇지 않게 권도현의 서재에 들어갔을 때였다. 윤서아는 그가 화를 낼까 봐 그녀를 말렸는데 권도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보고 싶다고 하면 보게 놔둬, 어차피 안에 중요한 건 없어.” 그러나 그 서재는 윤서아에게는 발을 들일 자격조차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 그 시절의 윤서아는 권도현이 정해놓은 수많은 규칙 속에서 조금씩 숨이 막혀가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도현 씨... 왜 하린 씨한테만 그렇게 특별하세요? 둘이 대체 무슨 관계예요?” 권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치 철없는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서아야, 내가 대화할 때 기본적인 예절이랑 목소리 톤을 가르쳐주지 않았어? 나랑 하린이는 후원자와 후견인 관계일 뿐이야. 괜한 의심으로 네 품격 떨어뜨리지 마. 권씨 가문 사모님이 질투 때문에 난리 친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어.”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앉히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불안해해. 내 아내가 될 사람은 너 말고 없어. 권씨 가문 사모님은 윤서아, 너야.” 하지만 그녀는 오늘에 와서야 깨달았다. ‘아내는 나고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었네.’ 그녀는 권도현이 ‘널 위해서’라는 말로 자신을 옥죄는 동안 김하린에게는 아무 말 없이 모든 걸 허락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됐다. ‘콘서트에 오지 말라던 말조차도 단지 내게 들키지 않기 위한 핑계였어.’ 윤서아는 더 이상 공연을 볼 마음이 나지 않아 그들의 사진을 한 장 찍어 권도현에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집에 도착했을 즈음 전화가 걸려 왔다. “서아야, 왜 콘서트를 간 거야? 내가 그런 곳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사람 많으면 다칠 수도 있어.” 예전 같았으면 몰래 간 게 미안해 죄책감이 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도현 씨... 당신은 저를 단정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죠. 제가 조금이라도 어긋날까 봐 늘 조심하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도현 씨는 스스로 세운 규칙을 단 한 번이라도 지킨 적 있으세요? 도현 씨는 하린 씨를 좋아하면서 왜 저랑 결혼하신 거예요?” “하...” 권도현의 한숨에는 미안함 같은 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서아야, 너랑 하린이는 달라. 하린이는 밖에서 키우는 잠깐의 즐거움을 주는 아이일 뿐이야. 넌 내가 직접 고른 권씨 가문 사모님이고. 신분이 다르면 요구하는 것도 다른 법이지. 내 아내라면 사람들 눈도 의식해야 하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해. 그런데 왜 굳이 하린이랑 너를 비교해서 스스로 격을 낮춰?” 그 말들은 너무도 당당해서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윤서아는 권도현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모서리를 하나씩 깎아냈고 마침내 그가 가장 만족하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권도현은 인제 와서야 말했다. 자신이 사랑한 건 그가 직접 없애버린 윤서아의 본래 모습이었다고.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김하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현 오빠! 오늘 가수의 사인 좀 받아다 주면 안 돼요?” “응.” 권도현은 짧게 대답하더니 윤서아에게 덧붙였다. “돌아가서 네가 갖고 싶어 하던 가방 사줄게.”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윤서아는 새까매진 화면 속에서 낯설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원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린 얼굴이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내쉬고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천천히 빼냈다. 그동안 윤서아는 이것이 권도현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악착같이 타협했고 그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권도현이 바라는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이 되기 위해 매일 배우고 연습하며 자신이 사랑하던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권도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권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자리는 그저 이름만 남은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윤서아는 그가 줄 수 없는 사랑을 더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권도현의 아내로 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그녀는 반지를 버리고 오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아, 그 북극 탐험 프로그램에 내 이름도 추가해 줘.”
이전 챕터
1/22다음 챕터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