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윤서아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속이 뒤틀리는 불쾌감에 지독한 구역질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억지로 맞닿은 입술 사이로 그의 목덜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선명하게 남은 붉은 손톱자국 하나... 그건 어젯밤, 김하린이 남겼을 흔적일 터였다.
그 순간 윤서아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남아 있던 마지막 힘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윽!”
권도현이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울컥 배어 나오는 게 보였다.
윤서아는 입가에 번진 피를 혀끝으로 천천히 훑어 닦아내고 마치 조롱하듯 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현 씨, 잊었어요? 오늘은 그날 아니잖아요. 이건 당신이 직접 만든 규칙이에요.”
그 말은 과거,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애정을 구할 때마다 그가 가장 자주 되풀이하던 말이었다.
“서아야, 규칙은 지켜야지. 일주일에 한 번이야. 오늘은 아니야.”
윤서아는 그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저더러 품위 있게 행동하라고 했잖아요. 사랑 타령만 하다간 품위를 잃는다면서요.”
말을 끝낸 윤서아의 눈빛엔 더는 기대도 미련도 없었다.
그때 윤서아의 머릿속에 과거 어느 날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날 권도현은 경쟁사의 표적이 됐다. 그들은 권도현에게 약을 탄 술을 먹이려 했지만 그녀가 대신 술을 받아 마셨다.
약효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윤서아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진 그녀는 제발 좀 도와달라고 비참할 만큼 그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권도현은 윤서아의 고통을 외면한 채 그녀를 얼음이 가득한 욕조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규칙은 규칙이야.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했잖아. 예외는 없어. 내가 같이 버텨줄게.”
윤서아는 차가운 물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품에 안고 버티던 그의 모습에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했다. 기형적일지언정 깊은 애정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와 같았고 역할만 바뀌었다.
“윤서아, 이건 예외가 아니야.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니까 거부할 자격 없어.”
말을 마친 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윤서아의 옷깃을 거칠게 벗겨 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정말 비열해요!”
윤서아는 몸부림치며 팔을 빼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손목이 쓸려 살이 벗겨졌고 그 위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팍!
권도현이 윤서아의 다리를 강제로 벌리려던 순간 그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의지랑 내 감정은... 도현 씨한테 처음부터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예요?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욕할 권리는 없잖아요. 저는 앞으로... 다시는 당신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은 권도현의 가슴을 망치처럼 쾅쾅 내려쳤다.
그의 얼굴에는 윤서아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요가 스쳤다.
그렇게 반사적으로 손을 놓는 순간 윤서아는 힘이 풀려 비틀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제야 권도현의 시선이 그녀의 손목으로 떨어졌다.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보는 순간 그의 목이 바짝 말랐다.
“오늘은 네가 너무 취했으니까 진정하고 쉬어. 이혼이니, 헤어지니 하는 말은 다시 꺼내지 마. 나는 그런 말 제일 싫어하니까.”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쾅!
문이 닫히자 방 안에는 윤서아 혼자 남았다.
그녀의 마음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지난 3년 동안의 자기합리화와 희생이 정말 아무 가치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괜찮아, 좀만 참으면 돼.’
윤서아는 사흘 후면 북극으로 출발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윤서아는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아 넣었다.
밀려오는 취기에 그녀는 천천히 잠에 잠겨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햇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윤서아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무의식적으로 침대 옆을 바라봤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해장국도, 따뜻한 물도 없었다.
그녀는 권도현이 술에 취해 돌아올 때마다 밤새 곁을 지키며 꿀물을 준비하고 젖은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어젯밤의 모욕과 방 안을 떠도는 싸늘한 공기뿐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때 윤경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신 뒤 전화를 받았다.
“윤서아!”
휴대폰 너머로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눈에 아직 내가 아버지로 보이긴 하냐? 이혼 같은 큰일을 감히 나한테 숨겨? 난 절대 반대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와서 똑바로 설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