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배씨 가문 별장.
사방에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걸려 있었지만 손님이라곤 보이지 않았고 배씨 가문의 직계 가족 몇 명만 양쪽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 성보람이 닭 한 마리와 혼례를 치르고 있었다.
왜 닭이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신랑 배선우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의사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배선우는 배씨 가문의 귀한 아들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배선우의 어머니 김미경은 여강시의 점쟁이를 불러 점을 쳤다. 점쟁이는 배선우가 살아날 유일한 방법이 바로 결혼하여 액운을 쫓는 것이라고 했다.
배선우는 일찍이 성씨 가문의 딸 성민서와 약혼한 사이였다.
결혼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성민서를 며느리로 들이려 했다.
하지만 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던 성민서는 가족들 몰래 이혼 경험이 있는 남자와 혼인신고를 해버렸다. 그 바람에 성범철은 하마터면 화병으로 쓰러질 뻔했다.
결국 배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의붓딸 성보람을 대신 시집보내기로 했다.
다행히 약혼한 지 십 년이 넘은 터라 배씨 가문 사람들은 성씨 가문 딸의 정확한 이름을 잊고 있었다.
성보람은 억지로 떠밀려 결혼한 것이 아니었고 그녀를 협박하거나 강요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정말 그녀 스스로가 한 선택이었다.
이 얼마나 좋은 혼사인데 왜 거절하겠는가?
배선우의 아버지 배정헌은 이 은혜를 갚겠다면서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시집만 오면 예물로 4백억 원을 주겠다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밥 먹을 필요도 없고 잠자리 시중을 들 필요도 없었다. 배선우가 세상을 떠나면 4백억 원으로 소운시에 집과 차를 사서 편하게 살면 되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외로우면 젊은 애인을 만나면 될 터.
결혼한다고 해서 배선우가 살아난다고?
터무니없는 소리.
성보람은 점쟁이를 믿지 않았다.
의사들도 살릴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그녀가 무슨 재간으로 저승 문턱까지 간 사람을 다시 이승으로 불러오겠는가?
그렇게 결혼식이 끝이 났다.
김미경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성보람을 쳐다보았다.
“선우 위층에 있으니까 올라가서 옆에 있어 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도우미한테 얘기하고.”
“네.”
성보람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녀는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볼살이 약간 있어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한 친척이 말했다.
“얼굴만 봐도 복덩이인 게 틀림없어요. 어쩌면 선우가 정말 깨어날지도 몰라요.”
“맞아요, 맞아요.”
다른 친척들도 맞장구쳤다.
성보람은 어이가 없었다.
‘내 얼굴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효능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위층으로 향했다.
첫 번째 방이 바로 배선우의 방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에 젊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남자의 안색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성보람은 하마터면 두 손을 모으고 아미타불을 외칠 뻔했지만 용기를 내어 눈을 가늘게 뜬 채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 배선우가 눈을 감고 있긴 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썹, 오뚝한 코, 그리고 깔끔한 얼굴라인을 보면 아주 잘생긴 얼굴인 건 틀림없었다.
“연예인 안 한 게 아까울 정도네.”
성보람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그에게 다가가 코에 손을 얹어보았다.
“숨이 너무 약한데? 죽은 거 아니야?”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어라?’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눈동자를 살짝 움직인 것 같았다.
성보람은 의아한 얼굴로 다른 한쪽 눈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눈이 떠지더니 검고 흰 눈동자로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악...”
깜짝 놀란 그녀는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은 바람에 뒤에 있던 의자에 걸려 의자와 함께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소란스러운 소리에 도우미가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세상에나. 도련님이 깨어나셨어요.”
도우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야? 선우가 깨어났어?”
김미경과 배정헌이 제일 먼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선우야, 정말 깨어난 거니? 서 도사님이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김미경은 감격에 겨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들을 끌어안았다.
배선우가 힘겹게 침을 삼켰다. 깨어나긴 했지만 기력이 없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울긴 왜 울어? 얼른 병원에 데려가.”
배정헌이 말했다.
“내 정신 좀 봐요. 의사 선생님이 깨어나면 빨리 병원에 데려오라고 했었는데.”
김미경은 재빨리 아들을 놓았다.
“구급차 불러. 보람아, 너도 같이 가자. 넌 복이 많아서 분명히 우리 선우를 낫게 해줄 수 있을 거야.”
성보람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 제가 그렇게 복이 많지는 않을 텐데요.’
22년을 살면서 그녀에게 죽어가는 사람을 되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성보람은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배선우가 죽으면 그냥 과부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
밤 10시.
성보람은 한복 차림으로 응급실 밖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말했다.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환자분 원래는 가망이 없었는데...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봅니다. 이젠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생명에도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 다행이에요.”
김미경은 두 손을 모은 채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서 도사님 감사합니다. 보람아, 정말 고마워. 넌 내 아들의 생명의 은인이야.”
그러고는 성보람의 손을 꽉 잡았다.
의사는 그녀가 엉뚱한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걸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그런 미신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니 너무 맹신하지 마세요.”
그러자 김미경이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도사님과 우리 복덩이 며느리한테 감사해야지, 선생님들한테 감사해야 하나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우리 아들이 가망이 없다고 했잖아요.”
의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만해. 지금부터는 의사 선생님들한테 달렸어.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치료 잘 받아야지.”
배선우는 곧바로 병실로 옮겨졌다.
성보람은 간호하기 위해 병실에 남았다. 말이 간호지, 배씨 가문에서 간병인 두 명을 고용했기 때문에 그저 형식적으로 옆을 지킬 뿐이었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성보람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언니...”
“보람아, 네가 나 대신 배씨 가문에 시집갔다며? 미친 거 아니야? 배씨 가문의 둘째 아들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잖아.”
성민서의 목소리에 분노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일반적으로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부모의 재혼으로 가족이 되면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성민서와 성보람은 예외였다. 나이 차이가 한 살밖에 나지 않았고 친자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집에서 살고 함께 학교에 다녀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괜찮아. 배씨 가문에서 예물로 4백억 원을 주겠다고 했어.”
성보람은 그녀가 괜한 생각을 할까 봐 서둘러 말을 끊었다.
“결혼한 후에 배선우가 죽으면 그 돈으로 자유롭게 살 생각이었지, 난.”
성민서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지금은? 배선우 어떻게 됐어?”
그 얘기에 성보람은 기분이 울적해졌다.
“정말 내가 액운을 쫓아냈는지 배선우가 깨어났어.”
성민서가 말을 잇지 못하자 성보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언니야말로 왜 그랬어? 조건도 좋고 젊고 예쁜데 왜 하필 한 부교수님 같은 한 번 갔다 온 늙은 남자랑 결혼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