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2화

“하나도 안 늙었거든? 이제 고작 서른 살이야.” 성민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서른 살은 남자가 가장 성숙하고 듬직한 나이야. 게다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알잖아.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짝사랑했는지.” 성보람은 성민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5살 때 성민서가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가 산사태를 만났는데 한도진이 그녀를 구해줬다. 어린 소녀는 그렇게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당시 성민서는 너무 어렸고 한도진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었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묻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한도진은 이혼한 상태였다. 늘 여리고 순했던 성민서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성보람은 누가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에 경찰을 짝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됐어. 내 얘기는 그만하고.” 성민서가 다급하게 말했다. “배선우가 깨어났으면 넌 어떡해? 배씨 가문에서 원래 결혼하려 했던 사람이 네가 아니라는 걸 곧 알아챌 텐데.” “걱정하지 마. 최대한 빨리 이혼하려고.” 성보람이 위로를 건넸다. “이만 끊을게. 나 지금 병실이라 통화하기 좀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카톡으로 하자.” 전화를 끊은 성보람은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 다음 날. 잠에서 깬 성보람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다. 김미경이 따뜻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보람아, 어젯밤에 선우를 걱정하느라 잠을 설쳤지? 네가 고생이 많구나.” “아... 아니에요. 고생은 무슨.” 성보람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휴게실에 배정헌과 김미경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왔다는 걸 알았다. 사실 배선우와 가까운 사이도 아니라서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밤에 잠을 설친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그런 것이었다. “세수하고 와. 선우 보러 가야지.” 김미경은 며느리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성보람은 마지못해 욕실로 들어갔다. 느릿느릿 씻고 나오니 간병인이 웃으며 말했다. “어서 남편분한테 가보세요. 깨어나셨어요.” 성보람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용히 문 앞까지 걸어가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미경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네가 사고를 당한 후로 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넌 내 목숨보다도 더 귀한 아들이야.” “죄송해요, 어머니. 걱정 끼쳐드려서.” 배선우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휴. 그래도 고비를 넘겨서 정말 다행이야. 이게 다 보람이 덕이야.” 김미경이 눈물을 훔쳤다. “누구요?” 배선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전에 너한테 정해준 성씨 가문의 약혼녀 말이야.” 배정헌이 일깨워줬다. 배선우는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야 약혼녀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성민서의 외할머니댁이 예전에 꽤 잘나갔고 십여 년 전에 배경 그룹을 크게 도와줬다고 한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배선우의 할아버지인 배청운은 두 아이가 어릴 적에 혼약을 약속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점점 더 잘나가게 된 배경 그룹과 달리 성씨 가문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지금은 소운시의 삼류 가문에 불과했다. 나중에 배청운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혼사는 계속 미뤄져 왔다. 그동안 배선우는 계속 반대했고 배정헌과 김미경도 동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성씨 가문의 형편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먼저 성씨 가문에 혼담을 제안한 건 어쩔 수 없어서였고 또 마땅한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미경이 설명했다. “전에 네가 중환자실에 보름 동안 있었는데 의사가 가망이 없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여강시의 서 도사를 찾아갔었어. 서 도사가 그러는데 결혼하여 액운을 쫓으면 네가 깨어난대. 그래서 성씨 가문을 찾아갔고 어젯밤에 너랑 보람이가 결혼식을 올렸어.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에 네가 깨어났지, 뭐야.” 그 말에 배선우의 잘생긴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나타났다. “어머니,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걸 믿으세요? 그 여자랑 결혼하지 않았어도 깨어났을 거라고요. 이 결혼은 무효예요.” “무효라니? 이미 혼인신고까지 다 했어.” 배선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성씨 가문 사람들이 의사도 살 가망이 없다는 사람한테 딸을 시집보낸다고요? 평생 과부로 살아야 할 텐데?” “우린 그쪽에서 동의하지 않을까 봐 결과가 어떻든 예물로 4백억 원을 주겠다고 했어.” 김미경이 솔직하게 말했다. “역시 돈 때문이었군요.” 배선우가 비아냥거렸다. “잔말 마. 이미 결혼했으니 어쩔 수 없어.” 배정헌은 엄숙하게 말을 끊은 후 문 앞에 있던 성보람을 돌아보았다. “보람아, 거기서 뭐 해? 어서 들어와.” 배정헌이 다정하게 손짓했다. 성보람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던 배선우는 성보람을 훑어봤다. 소문으로만 듣던 약혼녀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녀는 아직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계란형 얼굴에 약간의 젖살이 있었고 눈은 어린 사슴처럼 순수했다.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인 그녀가 한복을 입으니 참으로 단아하고 조신해 보였다. 성보람이 예쁜 건 인정이었다. 하지만 배선우는 예쁜 여자를 수도 없이 봤다. “아버지, 어머니, 잠깐 나가주세요. 이 여자랑 할 얘기가 있어요.” 배선우가 차갑게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그런데...” “됐어요. 둘이 얘기하게 해요.” 김미경이 갑자기 배정헌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가 있으면 오히려 불편해할지도 몰라요.” “보람이를 괴롭혔다간 널 호적에서 파버리는 수가 있어.” 배정헌은 경고하고 나서야 김미경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배선우가 혀를 찼다. ‘대체 아버지한테 무슨 수작을 부렸길래 아버지가 저러셔?’ 겉으로 보기에 순수하고 죄 없는 눈빛을 가진 사람일수록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돈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맞지? 100억 더 줄 테니까 이혼해.” 배선우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좋아요.” 성보람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말에 배선우는 더욱 경멸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넌 돈밖에 모르는 여자였어.” 성보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말대꾸도 잘하고.” 배선우가 더욱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성보람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머리를 다쳐서 잘못된 건 아니죠?” “뭐?” 그의 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징조 같았다. “내 말이 틀렸나요?” 성보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은 두 눈을 깜빡였다. “난 배선우 씨를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해요. 배씨 가문에서 나한테 시집오라고 제안했을 때 소운시 사람들 모두 배선우 씨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난 아직 젊고 배선우 씨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배씨 가문에서 많은 예물을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결혼했을 것 같아요? 내가 미쳤다고 과부가 되는 걸 좋아하겠어요?” 배선우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너...” “혹시 여자들이 배선우 씨 이름만 들어도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보람은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성보람.” 화가 난 배선우는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을 조금 일으키자마자 눈앞이 핑 돌았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