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성보람이 쓴 쪽지는 벽 한쪽 맨 위에 붙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보고, 세상의 모든 것을 함께 보고, 해 뜨고 지는 것을 함께 보고, 사람 사는 풍경을 함께 보고... 백발이 되도록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이거... 나한테 쓴 거예요?”
배선우는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심장 어딘가가 갑자기 쿡 찔린 듯했다.
“네. 여자 친구분이 그러셨어요. 오늘 같이 밥 먹는 사람이 자기 남자 친구라면서, 남자 친구한테 쓴 말이라고요.”
직원이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배선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성보람이 직원한테 몰래 저런 얘길 했다고? 그런데 남자 친구? 그건 이미 넘었잖아.’
하지만 남자 친구나 남편이나 결국 뜻은 비슷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두고 성보람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함께 사계절을 보고 세상의 모든 것을 함께하며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나란히 바라보고 사람 사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 겪고 결국엔 백발이 될 때까지 옆에 있고 싶다는 그 말은 꽤 욕심 많은 바람이지만 그녀다운 소망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아내의 역할을 잘 해내고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욱하지 않고 조금만 더 부드러워진다면 그 정도는 못 받아줄 것도 없었다.
적어도 오늘 식사를 함께하면서 느낀 건, 성보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별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꽤 적극적이고 모르는 건 솔직하게 물어보는 타입이었다.
배선우는 벽에서 쪽지를 떼어내 슬며시 슈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던 중, 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성보람과 마주쳤다.
“선우 씨... 설마 계산하신 건 아니죠?”
성보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했어.”
배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아니, 제가 사겠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선우 씨가 제 친구 일도 도와주셨고요.”
“여자가 계산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네가 사겠다는 마음만 받으면 되는 거지.”
배선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고개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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