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성보람은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아니, 도대체 언제 이렇게 친해졌고 언제 이렇게 분위기가 묘해진 거지? 고작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혹시 내가 술에 취해서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건가?’ “배선우, 그만해!”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그를 밀쳐냈다. “선우 오빠라고 불러야지.” 배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낮게 말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꽤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순간 성보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기운이 절반쯤 날아가 버릴 만큼 소름이 돋았다. “배선우, 당신 미쳤어?” 성보람은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다급히 말했다.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술은 네가 더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배선우는 연거푸 밀어내는 그녀의 행동에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네가 불러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이야? 내가 왜 여길 왔다고 생각해?” 성보람은 말문이 턱 막혔다. ‘뭐? 내가? 언제 불렀는데?’ 그녀는 그대로 말이 없어졌고 갑자기 혼란이 밀려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혹시 잘못 보낸 걸까? ‘분명 여민지에게 연락했는데? 아, 민지! 지금 문 앞에 있었지!’ 한참 이어지던 문 두드리는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잠시 멈추나 싶더니, 금세 또다시 요란하게 울려댔다. ‘...이 전화, 안 받으면 큰일 나겠다.’ 성보람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배선우가 먼저 손을 뻗어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아주 태연하게 전화를 받아 말했다. “성보람 지금 바쁘니까 그만 두드려요.” “배선우, 뭐라는 거야!” 성보람은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지만 이미 그는 전화를 끊어버린 뒤였다. 문 앞은 금세 조용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여민지가 조용해졌다. 밖에서 전화 너머 들려온 목소리를 들은 여민지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가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건 배선우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 지금 안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설마...’ 혼자 상상에 빠진 여민지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배선우 씨도 있으면서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부른 거야...’ 순간 여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