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그 뒤로 며칠 동안, 하선우는 밤마다 강서진과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다.
바로 옆 객실에 누워 있던 민설아는 두 사람의 숨결과 신음이 벽을 타고 넘어올 때마다 꼬박 밤을 새웠다.
불면의 밤은 끝없이 이어졌다.
재판 이혼이 확정되기 전날 아침, 방에서 나온 하선우는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민설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민설아의 얼굴은 피 한 방울 없는 듯 새하얬다.
“설아야, 어디 아파?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하선우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다가왔다.
민설아는 충혈된 눈을 들었다.
“어젯밤에... 너희 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못 잤어.”
순간 하선우의 표정이 굳었다.
얼굴에 어색함이 스쳤다가 곧 죄책감이 밀려왔다.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하선우는 살짝 허리를 숙여 민설아의 손을 잡았다.
“아, 맞아. 너 요즘 국군위문예술단의 공연 보고 싶다고 했잖아? 마침 표가 두 장 생겼어. 오늘 같이 보러 가자.”
민설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서진이 방문 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공연이에요? 저도 가고 싶은데...”
하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표가 두 장뿐이라...”
“나는 안 가도 돼.”
민설아는 조용히 말했다.
“너희 둘이 가.”
“안 돼!”
하선우는 즉시 반대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표 한 장 더 구해 볼게.”
하선우는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갔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정말로 표를 한 장 더 들고 돌아왔다.
“됐어. 세 장 다 구했어. 빨리 준비하자.”
하선우의 목소리는 들뜬 듯 가벼웠다.
민설아는 그 표를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얼음처럼 식어갔다.
하선우가 처음으로 힘을 써서 얻어 온 표였지만 그 표는 정작 자신이 아니라 강서진을 위한 것이었다.
공연은 화려했고,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사 쏟아졌다.
“목마르지 않아? 힘들면 말해.”
하선우는 연신 민설아 쪽을 살피며 부드럽게 챙겼다.
하지만 민설아는 공허하기만 했다.
지금 하선우의 다정함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죄책감에서 비롯된 배려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 휴식 시간.
민설아가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로 가던 중, 복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민설아 씨!”
임업청의 장영수 청장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산림 지대로 언제 떠날 건가요?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내일 떠날 거예요.”
민설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내일 어디로 떠나?”
갑자기 뒤에서 하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아야, 어디를 간다는 거야?”
민설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잠깐 봉사하러 가는 것뿐이야.”
하선우는 미심쩍다는 듯 민설아를 바라봤지만, 곧 당직병이 당황한 표정으로 뛰어오면서 말했다.
“대령님, 부대에서 급히 찾습니다!”
“설아야, 공연 끝날 때까지 너희끼리 보고 있어. 일 마치면 바로 올게.”
하선우는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영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말도 안 하고 떠나려고요?”
“말할 필요가 없어요.”
민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공연은 이미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민설아는 무대 위의 밝은 조명을 바라봤지만 눈앞이 흐릿하게 흔들릴 뿐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극장 전체에 귀를 찢는 경보음이 울렸다.
“불이야! 모두 대피하세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출입구로 밀쳐 나갔고, 몸이 부딪히는 충격과 울음소리가 뒤섞이며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혼란 속에서 누군가가 밀치는 바람에 민설아는 바닥에 넘어지며 무릎을 세게 부딪쳤다.
“으악!”
멀리서 강서진의 비명이 터졌다.
“발목이... 발목이 꺾였어요!”
민설아는 통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켜 강서진 쪽으로 기어갔다.
“서진 씨, 일어나요. 제가 부축할게요...”
하지만 이미 검은 연기가 천장까지 번지며 무대 커튼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객석 구석에 갇힌 채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우리... 우리 여기서 죽는 거 아니죠?”
강서진은 두 눈을 적신 채 떨며 울먹였다.
“저... 뱃속에 아기가 있어요.”
민설아의 손이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서진 씨가... 임신했어요?”
민설아의 목소리는 불길 속에서도 얼음처럼 차갑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