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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드문 분노가 소이현의 가슴 깊숙이에서 끓어올랐다. 그녀는 참을 수 없어 심진희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이모, 정말 하연서가 그렇게 소중하신가 봐요!” 심진희는 소이현의 눈빛에 담긴 분노에 깜짝 놀랐다. 이성적이고 똑똑한 조카가 이렇게 감정을 내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다. “하연서를 사랑하고 아끼는 건 좋아요. 하지만 제가 모르는 데서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런 간단한 부탁도 안 들어주시는 거예요?” 소이현의 말투는 굳게 다문 이 사이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뚜렷하게 배어 나왔다. 그건 지나친 요구도 아니었고 자신을 이해해 줄 이모라면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심진희는 난처한 듯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망설임과 난처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그 간단한 요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소이현의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는 듯한 허망함에 화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모든 감정이 식어버렸다. 그녀는 심진희를 아무 말 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등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심진희도 오랜만에 만난 조카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소이현을 붙잡고 싶었지만 하연서 이야기만 나오면 대화는 항상 막혔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소이현을 너무 티 나게 챙기면 하연서가 상처받을까 봐 그것도 걱정이었다. 차에 올라탄 소이현은 십 분 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북받쳤던 감정은 심진희의 그 한마디에 완전히 꺾여버렸고 이제는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기대는 늘 실망을 안겨줬고 실망은 고통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상처를 막을 수는 없어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소이현은 핸들을 꽉 잡고 시동을 걸어, 집이 아닌 중심 상권으로 향했다. 토요일 자선 만찬에 참석해야 하는데 입을 만한 드레스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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