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순간 강윤서가 멍하니 넋을 놓았다.
‘네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뭘 취소해?’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기나 해? 결혼식을 취소하자고? 넌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주위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우현아, 네가 윤서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기 누가 몰라? 웃기는 소리 그만 집어치워.”
“그러게 말이야. 장난 그만하고 얼른 사과해.”
하긴, 모두가 날 강윤서 없이 못 사는 남자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그녀를 너무 사랑하니까.
하지만 이 사랑이 내 모든 걸 앗아갔다.
전생에 그녀에게 철저히 배신당했고 죽음을 택하면서 사랑도 전부 내려놓았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원망뿐이다.
“청첩장 내가 다 돌려받을게.”
나는 다른 사람들 따위 거들떠보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강윤서를 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이만 헤어져.”
곧이어 결혼반지를 빼서 그녀에게 내던졌다.
한때 나는 제원에 있는 쥬얼리 매장을 반 이상 돌아다니며 겨우 이 반지를 골랐다.
전 세계에 이 한 쌍뿐인 단독 제작 반지였고 심지어 전생에는 죽을 때까지 끼고 있었다.
그런 반지를 지금 나는 그녀에게 내던졌다.
강윤서는 바닥을 뒹구는 반지를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이런 것들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말을 마친 나는 자리를 떠났고 뒤에서 뭇사람들이 쉬쉬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찐이야. 결혼반지까지 빼버렸잖아.”
“그냥 간 떠보는 거지. 항상 지저분한 수작이었잖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건우가 이번엔 진짜 자극했나 봐?”
“그해 건우가 출국했으니 망정이지, 쟤 따위가 아무리 대시해봐라, 윤서가 받아주나.”
...
룸 문을 나설 때 강윤서가 엄청 높은 소리로 외쳤다.
“우현 씨! 거기 서! 사과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장난 좀 그만 쳐.”
아직도 내가 장난치는 거로 보일까? 아직도 본인은 전혀 문제없다고 여기는 걸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룸 안의 흐릿한 불빛에 내 표정이 잘 안 보였던지 선뜻 다가오며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화 풀어. 아까는 농담 좀 한 거야. 응?”
나는 팔을 빼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딴 남자 만진 손으로 날 건드리지 마.”
강윤서는 허공에 손이 붕 뜬 채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우현 씨,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꼭 이렇게 날 창피하게 해야겠어? 적당히 하라고!”
그녀는 이미 내 사랑에 적응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복종하는 내 모습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나의 헌신과 진심 어린 마음을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힐긋 바라봤다.
“적당히 해야 할 건 내가 아니야. 너희가 먼저 선을 넘은 거라고. 딴 남자랑 놀아난 여자, 난 진짜 별로야.”
놀아난 여자... 장내의 모든 이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별안간 강윤서가 하찮은 년으로 전락했으니까.
그녀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룸 밖에 나서기만 해봐. 평생 너 안 볼 거야.”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 약속 꼭 지키길 바라.”
바에서 나온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폰이 계속 진동해서 꺼내 봤더니 교수님이 전체 직원 모두 돌아와서 야근하라는 통보였다.
고가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많은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전생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땐 내가 다쳐서 입원한 바람에 구조에 참여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파혼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우선 병원부터 가야 했다.
나는 병원에서 밤새 바삐 돌아치며 수술을 다섯 개나 했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 탈진할 것만 같았다.
겨우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보았는데 강윤서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20통이나 들어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강윤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현 씨는 대체 환자가 먼저야 우리 아빠가 먼저야? 아빠 심장병이 발작했는데 왜 도통 연락이 안 되냐고? 이게 바로 우현 씨가 날 사랑하는 방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