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내 여자 친구한테 한 번만 더 손대면 나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 말에 강윤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의 마음은 오히려 평온하기만 했다. 그때, 윤시원이 조심스럽게 내 소매를 당겼다. “우현 씨, 어르신이 이미 계약서에 서명하셨어요. 제 연락처도 따로 받아 가셨고요. 우리 이제 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는 강윤서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나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윤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에 오르자마자 윤시원은 내 손을 재빨리 놓고 계약서를 내게 건넸다. “그 두 사람 혹시 무슨 일 저지를지 몰라서 어르신께 우선 집 안에만 계시고 문도 잘 잠그시라고 말씀드렸어요.” 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계약서를 마무리하기엔 어려울 것 같아서 내일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세부 사항 조율하고 남은 부분은 일주일 내로 정리될 거예요. 기획안까지 완성되면 길어야 한 달이면 될 것 같아요.” 윤시원의 전문성은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계약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방금 전 그 당찬 태도와 겹쳤다. 분명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전의 소심하고 조용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감 있고 단호하며 무언가 확실히 달라진 느낌이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윤시원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대표님, 아까 제 연기 괜찮았어요?” 그제야 나는 아까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가짜 여자 친구 역할을 그녀는 약속대로 멋지게 해냈다. 다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칭찬했다. “응. 정말 잘 해냈어.”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녀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애초엔 며칠은 걸릴 줄 알았던 이 일이 단 한 번에 정리됐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회사로 돌아간 뒤 이 비서에게 결과를 얘기하니 그녀도 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