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강민숙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집사가 날 맞이했는데 말투며 태도며 주인 강민숙과 한통속인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는 내게 존칭 하나 없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따라오시죠.”
별장 안으로 들어서 보니 강민숙과 최은영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수다 삼매경이었다. 내가 들어서는 걸 본 최은영은 눈을 번뜩이며 내 온몸을 훑었고 입꼬리에 얄미운 비웃음을 얹은 채 날 노려봤다.
강민숙은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왔니? 고하준이랑 살려고 너도 빨리 이혼하고 싶나 보지?”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쓸데없는 말은 넣어두시고 이혼 합의서나 가져오세요. 사인하러 왔으니까.”
내가 생각보다 순순히 나오자 강민숙은 놀란 눈치였다.
물론 그녀도 고수혁이 나와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길 바랐겠지만 내가 눈물 콧물 흘리며 매달리는 모습쯤은 기대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런 장면이 빠지니 강민숙은 어딘가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곧 집사가 묵묵히 이혼 합의서를 들고 왔고 강민숙은 그것을 내 앞에 툭 던지듯 내밀었다.
“사인해. 수혁이가 너더러 딴짓하면서 더는 고씨 가문 체면 깎지 말고 서로 좋게 끝내자더라. 윤씨 가문도 너 때문에 더 피해 볼 일 없게 하고 말이야.”
사인할 생각으로 온 건 맞았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모욕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마치 파리 한 마리를 꿀떡 삼킨 기분이었다.
‘바람을 피운 게 누군데? 누가 체면을 깎았는데?’
분노를 꾹 눌러가며 나는 합의서에 적힌 조항들을 하나씩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이상했다.
‘고수혁, 정말 악랄하네.’
내가 변호사에게 부탁했던 원래의 이혼 합의서는 겉으로 드러난 그의 일부 재산만을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손톱만큼도 안 되는 작은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날 그냥 보내주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합의서에는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외도를 저질렀으니 빈손으로 나가야 한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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