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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오늘 밤은 나와 고수혁이 한 달에 한 번 부부 관계를 하는 날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가벼운 신음 소리를 냈지만 차가운 고수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욕망의 빛도 없었다. “윤세영, 규칙을 어기면 안 되지.” 목욕 가운을 걸치고 욕실로 향하는 고수혁의 모습에 침대에 홀로 남겨진 나는 치욕스러움과 굴욕감에 눈을 감았다. 3년 전 우리의 첫 아이가 죽은 상태로 태어난 후부터 나의 모든 생활이 바뀌었다. 당시 고수혁은 ‘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라는 구실로 별장에 불당을 지었고 일 년 내내 향을 피우며 불상을 모셨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며 부부 생활은 한 달에 많아야 한 번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관계를 할 때 성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천박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제 겨우 25살인 나는 욕구가 가장 왕성할 때였지만 고수혁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고수혁이 한밤중에 집을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절친 송미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송미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영아, 너 빨리 실검 봐봐! 서아현 스폰서 고수혁 같지 않아?” 실검을 클릭하는 순간 머리가 윙 하고 울리며 터질 것 같았다. [단독! 인기 여배우 서아현, 스폰서의 지원으로 스타덤에 오른 듯! 스폰서 신분 추후 공개 예정!] 흐릿한 사진에 뒷모습만 찍혔지만 내 남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평소 염주를 끼고 다니던 오른쪽 손목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서아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에 익명의 이메일 두 통이 왔다. 고화질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눈앞에 펼쳐졌다. 첫 번째 사진에는 고수혁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귀여운 어린 소녀를 안고 있었고 공주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는 고수혁의 목을 감싼 채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두 번째 사진에는 서아현이 고수혁의 어깨에 있는 먼지를 털어주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냉담하게 나를 밀쳐내기만 하던 고수혁은 서아현의 손길에 피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수십 장의 사진을 보고서야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3년 동안 나를 점점 더 무정하게 대한 이유가 어쩌면 고수혁이 말한 불교를 믿는다는 것과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실제 이유는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쥔 나는 계속해서 깊은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 두 번째 이메일을 열었다. 메일에는 한 줄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사모님, 이대로 폭로할까요? 아니면 20억 원에 이 사진들 살 건가요?] [20억 원에 살게요.] 메일을 보낸 뒤 통장에 있는 돈을 전부 끌어모아 남편과 남편의 애인을 망신시킬 수 있는 사진들을 사들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통장 속의 돈이 사실은 결혼할 때 고수혁이 준 예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수혁이 배신한 증거를 사들이는 데 쓰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소녀를 뚫어지게 바라본 나는 만약 우리 아이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 사진 속 소녀와 비슷한 나이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우리 아이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아이는 유골함의 한 줌 재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잃은 아픔에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고수혁은 가볍게 한마디만 했다. “아이는 또 생길 거야.”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또 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우리의 20년 지기 친구 같은 사랑, 프러포즈를 하면서 했던 맹세들은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진을 산 후 송미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변호사 있어? 이혼하려고.” 더러운 남자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송미경은 바로 변호사를 알아본 뒤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가 이혼 합의서 초안을 작성했지만 상대방의 자산을 모르기 때문에 자산 분할을 명확히 적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바로 말했다. “그럼 일단 이혼 합의서를 보내 달라고 해줘. 재산 문제는 고수혁과 천천히 이야기할게.” 사진을 사는 데는 20억밖에 들지 않았지만 고성 그룹 대표이사의 명예는 이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증거를 손에 쥐고 있다면 재산 분할이 뭐가 두렵겠는가? 출력한 이혼 합의서를 거실 탁자 위에 놓고 고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바로 연결되었다. “윤세영 씨, 무슨 일이시죠? 수혁 오빠가 아이랑 놀고 있어서요.” 달콤한 여자의 목소리는 얼핏 들으면 예의 바른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예리한 칼처럼 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서아현은 내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수혁이 밖에서 싱글인 척하며 서아현을 속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깐 했었지만 알고 보니 서아현은 본인이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불륜녀임을 알면서도 고수혁을 만나고 있었다. 이런 여자와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냉담하게 말했다. “고수혁을 바꿔 주세요.” “죄송해서 어떡하죠... 아이가 수혁 오빠 옆에만 딱 달라붙어 있어서 어려울 것 같아요. 급한 일이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전달할게요.”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서아현이 한마디 하자마자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를 계속 볼 수 있어요? 아빠 항상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잖아요.” 고수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랬다. “물론이지, 아빠는 내일 아침에도 네 옆에 있을 거야.”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수혁의 이런 목소리가 얼마나 오랜만이란 말인가? “윤세영 씨? 더 할 말 있나요? 없으면 우리도 이만 쉬어야 해서요.” 서아현의 말은 아주 예의 바른 것 같았지만 말 한마디마다 가시가 박혀 있는 듯했다. “할 말, 있고말고요. 당장 와서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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