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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인적이 드문 별장 도로에 가로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임이서는 가방에서 은침을 꺼내 대추, 곡지, 합곡, 십선 네 개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사실 조금 전 별장에 있을 때부터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별장 안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박헌재가 직접 가르친 제자였고 박헌재는 의학계에서 의성이라 불렸다. 임이서가 세 살 때 마을 아이들과 진흙 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박헌재가 학생들을 한 무리 데리고 약초를 캐러 산에 가는 걸 보았다. 호기심에 따라가 몇 마디 들었을 뿐인데 많은 약초를 구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다른 집 아이들은 모두 집에 가서 밥을 먹었지만 임이서는 더러운 손가락을 빨면서 학생들이 컵라면을 먹는 것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이 캔 많은 약초 중에 일부 약초는 희귀 품종이라 캐기 매우 어렵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임이서는 바로 산으로 가서 약초를 한 움큼 캔 다음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제가 질경이, 산설단 등 이 약초들을 드릴 테니 라면 한입만 주시면 안 될까요? 딱 한 입만요. 너무 배고파서요...” 임이서가 단숨에 여러 종류의 약초 이름을 말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란 박헌재는 큰 컵라면 한 통을 줬을 뿐만 아니라 라면 몇 상자를 사주면서 집에 가봐도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임이서의 집에는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와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할머니밖에 없었다. 그 후 박헌재는 자주 찾아와 할머니를 치료해주기도 했다. 임이서도 그때부터 박헌재에게 의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이 은침 한 통은 재작년 박헌재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남겨준 것이었다. 임씨 가문에 돌아온 1년 동안 그녀는 이 은침으로 아버지의 오십견, 어머니의 편두통, 큰오빠의 경추병, 둘째 오빠의 삼차 신경통, 넷째 오빠의 불면증,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오빠의 건초염... 심지어 임효진의 자궁 냉증까지 치료했다. 셋째 오빠는 의사였고 게다가 매우 실력 있는 외과 의사였기에 그녀가 은침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에 대해 다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셋째 오빠가 임이서에게 경고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박 선생님의 제자가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만 이젠 돌아가셨어. 그러니까 박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침을 놓지 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박 선생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임이서가 실제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몇몇 오빠들이 오랫동안 앓아온 질병을 치료한 건 사실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해주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침술을 업신여겼고 심지어 그녀 자체를 완전히 무시했다. 전생의 이때쯤에도 임이서는 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만약 임효진이 천사의 눈물을 찾다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창고 방에서 죽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다. ... 임이서는 시내로 가서 약을 산 다음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 기숙사로 갈 준비를 했다. 비록 지금 다니는 학교가 연성 최고의 명문 학교이고 학생들 모두 잘사는 집안의 아이들이었지만 점심시간과 개인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임이서가 기숙사에서 지낸다면 그건 선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막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이상한 시선이 쏟아졌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느꼈다. “쟤 임이서 아니야? 도벽 때문에 퇴학당했다던데.” “캐리어는 왜 끌고 다니지? 저 안에 훔쳐 온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거 아니야?” “정말 몰랐어. 얌전해 보였는데...” 임이서는 생각하지 않아도 임효진과 임지성의 짓이라는 걸 알았다. 전생에도 그녀는 근거 없는 죄명을 뒤집어쓴 바람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사람들이 생각 없이 하는 소리 때문에 한때 우울증에 시달렸다. 변명하려고도 했지만 임효진의 교묘한 말솜씨에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임이서가 다니는 엘리트반에서는 그녀를 다른 반으로 내쫓으려 했고 심지어 늘 존경했던 담임 선생님조차 싸늘하게 대했다. “이서 너 우리 엘리트반에 너무 안 좋은 영향을 미쳤어.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전국 수석을 노리는 애들인데 네가 망치기라도 하면 뭐로 보상할 건데? 제발 부탁인데 반을 옮기면 안 될까?” 임이서가 전국 수석이 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컸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믿지 않았고 완전히 포기했다. 엘리트반의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한 임이서는 결국 열등반으로 옮겼다. 열등반에서도 노력하면 전국 수석으로 대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등반에는 임효진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임지성의 지휘 아래 그녀를 반 학기 동안이나 괴롭혔다. 수업 시간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옷에 먹물을 뿌렸으며 의자에 접착제를 바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방에 죽은 쥐를 넣고 체육 시간에 농구공, 배구공, 야구공을 그녀의 머리에 던지는 등 별의별 방법으로 괴롭혔다. 주범인 임지성은 멀리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임이서가 괴롭힘을 당하고 나면 그때 다시 다가가서 혐오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네가 훔친 것에 대한 벌이야. 네가 나쁜 버릇을 고치도록 너에 대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으니까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임이서는 끊임없는 괴롭힘에 점점 무너져 내렸다. 수능 날 임효진이 임이서에게 다가가더니 걱정 가득한 얼굴로 우유를 건네면서 꼭 수능을 잘 보라고 했다. 임효진이 절대 호의적일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임지성이 보고 있어 그 우유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임이서는 배탈이 나서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그 끔찍했던 장면들이 떠오르자 임이서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상하게도 이번 생에는 학교에서 바로 퇴학당했다. ‘하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날 쉽게 쫓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그녀는 더 이상 전생에서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꾹 참는 임이서가 아니었다. 임이서는 트렁크를 끌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교감은 다짜고짜 임이서에게 호통치면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임이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봐. 너 퇴학당했어.” 임이서는 몸을 굽혀 서류를 주웠다. 퇴학 증명서였는데 위에 부교장의 도장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저를 퇴학시키기 전에 교장 선생님의 동의를 구하셨나요?” 그러자 교감은 잠깐 당황했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너 하나 퇴학시키는데 교장 선생님까지 나설 필요 있어? 너 같은 불량 학생은 학교에 남아 있어 봤자 학교의 명예만 실추시키고 사회에 나가면 사회를 어지럽힐 거야.” 임이서는 차갑게 웃으면서 손에 든 퇴학 증명서를 찢어버렸다. “저를 퇴학시키고 싶다면 교장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 오세요.” 그러고는 트렁크를 끌면서 나가버렸다. 그녀의 모습에 교감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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