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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임이서, 거기 서.” 교감이 화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사무실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문 앞에 서 있는 소녀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학부모를 학교로 부른 한 소년마저 불평을 멈추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전님, 쟤 물건 훔쳐서 퇴학당했대요. 쟤랑 비교하면 내가 저지른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임이서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상전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힐끗 본 순간 잠시 멈칫했다. 남자는 정교하게 재단된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창밖에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완벽한 옆모습과 먹물처럼 짙은 눈동자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남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깊은 두 눈에 기쁨이 스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평소의 냉랭하고 싸늘한 태도로 돌아왔다.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눈빛으로 임이서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소년이 눈을 크게 떴다. 늘 얼음처럼 차가웠던 상전이 한 소녀를 이렇게 오랫동안 빤히 쳐다볼 줄은 몰랐다. “쟤 이름이 뭐지?” 남자가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압박감에 소년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임... 임이서예요.” 소년은 겁에 질려 말까지 더듬었다. 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임이서의 시선을 끌었다. “임이서, 학교에서 쫓겨나서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선생님께 화를 내면 어떡해?” 임효진이 언제 교무실에 나타났는지 문제집 뭉치를 안고 있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교감 선생님에게 말했다. “교감 선생님, 화내지 마세요. 이서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교감의 시선이 임효진에게 향하자마자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가 다시 임이서에게 향했을 땐 혐오 섞인 눈빛으로 변했다. “학생은 학생다운 모습이 있어야지. 효진이 좀 봐. 품행이 단정하고 스승을 존경할 줄 아는데 넌? 겨우 도둑질이나 하고 또 어른도 무시하고.” 교감의 말투가 더욱 무서워졌다. “넌 남을 좀 본받아야 해.” 그러자 임이서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싸늘하게 웃었다. “근데 전 그게 안 되더라고요. 연기력이 별로라서.” “너!” 교감은 달리 방법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임효진이 재빨리 슬픔과 실망에 찬 얼굴로 말했다. “임이서, 난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 근데 이렇게까지 날 오해할 줄은 몰랐어.” 그 시각 교무실 밖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임효진을 짝사랑하는 몇몇 학생들이 나서서 말했다. “임이서, 적당히 해. 어떻게 효진이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네가 효진이의 천사의 눈물을 훔쳤는데도 효진이는 널 탓하지 않고 계속 편을 들어줬어. 근데 이딴 식으로 보답해?” “은혜도 모르는 것. 너 같은 사람은 우리 학교에 다닐 자격도 없어.” 심지어 평소에 다정했던 담임 선생님과 기간제 교사도 임이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야. 사회에 나가면 작은 잘못이 큰 잘못이 되고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돼.” “우린 이서 학생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례한 학생은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네요.” 교무실 전체가 재판장이 된 것처럼 모두들 임이서에게 언어 공격을 퍼부었다. 그때 임지성이 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임이서가 어떤 비난을 받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이서, 네가 또 효진이를 괴롭혔다며?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학교에서 널 퇴학시킨 건 효진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어떻게 하루 종일 효진이만 물고 늘어져? 제발 좀 내버려 둬.” 마치 임이서가 극악무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임이서에게 쏠렸다. 하지만 임이서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고 맑고 깨끗한 눈동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임지성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비난과 질책을 마주하면 임이서가 겁을 먹고 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용서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용서를 구하면 절대 쉽게 용서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항상 임효진을 괴롭혔기 때문에 쓴맛을 한번 보여줘야 했으니까. 그런데 임이서의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에 임지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임이서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잠시 둘러본 후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학교에서 저를 퇴학시킨 이유가 단순히 제가 임효진의 천사의 눈물을 훔쳤기 때문인가요?” 그러고는 임지성을 힐끗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에 임지성은 저도 모르게 제 발이 저려 시선을 피했다. 그때 문밖에서 한 학생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면 뭐 때문인데? 너 같은 도둑은 우리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임이서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효진과 임지성을 보며 물었다. “내가 물건을 훔쳤다고 두 사람이 말했어?” 그러자 임효진이 재빨리 고개를 저으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해하지 마.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럼 말해 봐. 천사의 눈물 진짜 내가 훔쳤어?” 임이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 추궁하자 임효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촌뜨기가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지? 예전에는 대놓고 따지지도 못하고 변명하기에만 바빴었는데. 그때 내가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서 좋은 말만 해도 내가 원하는 죄명을 뒤집어씌울 수 있었단 말이야.’ 하지만 대치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임효진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당연히 아니지.” 임효진은 겉으로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임이서를 험하게 욕하고 있었다. 임이서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차분하고 맑은 눈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제가 물건도 훔치지 않았는데 지금 이러는 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에 해당되지 않나요? 학교 규칙 제8조에 따르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한 자는 징계하고 15학점을 감점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학교에서 그런다면 우수 교사 평가 자격을 박탈해야겠죠?”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교무실 안팎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 임효진을 위해 나서서 임이서를 비난했던 학생들도 모두 뒷걸음질 치며 발뺌하기에 바빴다. “전...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거예요.” “저도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어요.” “훔치지 않았으면 훔치지 않은 거지, 뭘 이렇게까지 해?” 선생님들조차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임이서와 눈을 마주칠까 봐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임이서는 그들의 반응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몇 마디 말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전생에서는 왜 항상 임효진에게 끌려다녔을까? 아마도 임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신경 쓴 탓일 것이다. 그때의 임이서는 사랑받는 양녀 임효진을 포함한 임씨 가문의 누구에게도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이번 생에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니 그런 고민들이 사라졌고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이서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상하네요. 제가 임효진의 천사의 눈물을 훔치지 않았는데 그럼 이 소문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그러고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효진을 쏘아봤다. 그녀의 시선에 깜짝 놀란 임효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오해하지 마. 정말 내가 말한 게 아니야.” 임지성이 재빨리 다가와 임효진을 감쌌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눈에 의혹과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억지로 밀어붙였다. “무슨 뜻이야? 지금 효진이가 말한 거라고 몰아가는 거야? 효진이가 말한 게 아니라잖아. 뭘 더 어쩌겠다는 건데?” “하지만 학교에서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 없어.” 임이서가 코웃음을 쳤다. “임효진이 말한 게 아니라면 그럼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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