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임지성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사실 그 역시 속으로 무척이나 의아했다.
천사의 눈물은 분명 임이서가 훔친 게 아니었다. 당시 그도 현장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학교에 퍼진 걸까? 게다가 임이서가 훔쳤다는 식으로 부풀려졌다.
그는 임효진을 돌아봤다. 그 순간 임효진은 상처를 받았다는 듯 눈시울이 붉어졌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오빠, 나 안 믿어?”
마음이 약해진 임지성은 잠깐 망설였다가 결국 가장 아끼는 동생 임효진을 믿기로 했다.
“당연히 널 믿지. 걱정하지 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아.”
그는 손을 들어 임효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임효진은 그제야 환하게 웃으면서 임이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감추지 못하는 그 의기양양함을 포착한 순간 임이서는 참지 못하고 눈을 흘겼다.
임지성이 돌아서서 싸늘하게 물었다.
“임이서, 또 네 수작이지? 일부러 모두가 널 오해하고 비난하게 만들어서 피해자가 된 다음 예전의 네 행동을 용서받으려고? 하마터면 네 꾀에 넘어갈 뻔했어.”
임이서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대단하네, 임지성. 그 상상력으로 소설 썼으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됐겠어. 됐어. 마음대로 생각해. 모두 내가 설계한 거야. 사람들이 날 도둑이라 생각하고 욕하고 괴롭히는 게 좋아... 왜냐하면 난 열등감이 있으니까. 됐어?”
그녀는 웃음을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
“너희 같은 사람들이랑 말하는 건 시간 낭비야.”
임지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뭔가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일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무슨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임효진의 순진하고 착한 모습에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굳혔다.
‘임이서가 괜한 일을 만든 게 분명해.’
바로 그때 거만하면서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정말 흥미진진한 쇼네. 어떤 사람은 사실을 왜곡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는데 바로 학부모 소환 통보를 받은 소년이었다.
소년 쪽을 본 순간 임지성의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마치 무서운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옆에 있던 남자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뱉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차가운 칼날 같았다.
“이런 학생이 있는 걸 보니 이 학교 선생님들의 수준도 어떨지 뻔하네요.”
남자는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잘생긴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깊고 검은 눈은 모든 거짓과 속임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임지성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입술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임이서의 칠흑같이 어두운 두 눈에 탐색과 의아함이 뒤섞인 빛이 스쳤다. 그리고 남자를 본 임효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가 이내 다급하게 설명했다.
“저, 저기요. 우리 오빠를 오해하셨어요...”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지성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상대가 임씨 가문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바로 직감했다.
교감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훈계했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당신네 아이나 똑바로 챙겨요. 당신네 아이는 상습적으로 학교를 빼먹고 PC방이나 다녀요.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다면서요? 아이 교육에 소홀한 당신 책임도 커요...”
그 후로도 주절주절 계속 말했다. 마치 교감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도 찾은 듯 장황한 비판을 시작했다.
조금 전 임이서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 같기도 했고 이 기회를 틈타 앙갚음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소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상전님 지금까지 이런 꾸중을 들은 적이 없는데. 정말 재수 없어. 하필 상전님이 귀국한 어제 담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 전화가 와서는 학부모를 만나겠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런 상황에서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었다.
그들은 연성에서 고귀하고 특별한 신분이었기에 평범한 사람처럼 살기 위해 지금까지 진짜 신분을 숨겨왔다.
학교에 다닐 때도 그저 평범한 재벌 2세인 척했다.
교감은 지금 그가 신나게 혼내고 있는 사람이 거물급 인사라는 걸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상전이라 불리는 남자의 신분을 얘기한다면 아마 놀라서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고 가늘고 깊은 눈에서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평소 엄격하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교감도 남자가 내뿜는 압도적인 아우라와 위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도 점점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남자의 위압감에 짓눌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소년의 학부모를 불렀으니 부모님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남자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긴장한 나머지 손을 비비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죠. 연정우, 가족분 모시고 먼저 나가봐.”
소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상전을 쳐다보았다.
남자의 시선이 교감에게 닿았는데 눈빛이 어찌나 차가운지 상대가 다 얼어붙을 정도였다.
교감은 마치 찬바람을 맞은 듯 온몸이 오싹해졌고 조금 전의 충동적인 비판을 후회했다.
남자는 긴 다리를 뻗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시선을 거두기 전에 잊지 않고 임이서를 곁눈질했다.
임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어쨌거나 조금 전 그녀를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그녀 역시 이 신비로운 남자에게 저도 모르게 호감을 느꼈다.
남자가 나가자마자 교무실을 짓누르던 위압감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 전 남자의 안색이 굳어졌을 때 그들도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얼마나 무서운 아우라를 풍겨야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걸까?
교감은 더욱 불안해하며 조금 전 충동적인 행동을 후회했다. 임이서도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임지성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뒷모습은 당당했고 묶은 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분명 학교에서 쫓겨났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임이서, 너 퇴학당했어. 지금 너한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어. 짐을 싸서 학교를 떠나거나 아니면 나랑 효진이한테 사과해. 그럼 네가 학교에 남도록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임이서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
“나를 쫓아낸 이유가 임효진의 천사의 눈물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젠 내가 훔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잖아. 근데 무슨 명분으로 날 퇴학시켜?”
“널 퇴학시키는데 이유가 필요해?”
임지성이 경멸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넌 원래 시골에서 온 촌뜨기잖아. 우리 학교에서 특별히 받아준 거야. 이젠 학교에서 배경 없는 학생을 받기 싫다는데 뭐가 문제야?”
결국 그들의 눈에 임이서는 그저 시골에서 온 촌뜨기였을 뿐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경계하고 무시하더라니.’
임이서가 차갑게 말했다.
“날 내쫓고 싶다면 교장 선생님더러 직접 말씀하시라고 해.”
임지성이 대놓고 비꼬았다.
“교장 선생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분이야. 너처럼 평범한 전학생 한 명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리가 있겠어? 게다가 오늘 교장 선생님은 귀한 손님을 만나셔야 해서 널 상대할 시간도 없어.”
연성에 있는 이 명문 사립 고등학교는 뛰어난 교육 환경과 우수한 교사진을 자랑했다.
물론 이런 학교의 교장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재계 여러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런 학교에서 귀한 손님이라고 불릴 정도면 더욱 대단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임이서는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교장 선생님이 만난다는 그 귀한 손님이... 아까 그 남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