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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효진의 두 눈에 질투가 얼핏 스쳤지만 곧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고는 무심한 듯 물었다. “그나저나 언니한테 왜 갑자기 선물을 사주려는 건데?” “이서 어제 생일이었어.” 임지성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까먹었으면 먼저 말하면 되잖아. 왜 우리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 굴어? 선물을 줬더라면 집도 나가지 않았을 거고 나한테도 함부로 하지 않았을 텐데.’ “어머. 오빠가 말 안 했으면 까맣게 잊을 뻔했어. 언니 생일도 어제였지, 정말.” 임효진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어쩐지 언니가 그렇게 화를 내면서 엄마 아빠가 주신 천사의 눈물을 달라고 떼를 쓰더라니. 언니 줘야겠다.” “안 돼. 그건 부모님이 너한테 주신 거니까 그냥 하고 있어.” 휴대폰을 집어넣던 임지성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걔는 화낼 자격도 없어. 임씨 가문에서 먹고 자고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해줬으면 됐지. 이미 충분히 잘해줬는데도 만족이라는 걸 모르고 널 내쫓고 천사의 눈물을 빼앗으려 했어. 그렇게 욕심 많은 애가 학교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두고 볼 거야.” ‘무조건 다시 임씨 가문으로 돌아와서 사과하겠지. 선물 그냥 주지 말아야겠어. 버릇을 고쳐 놔야 해.’ 임효진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언니가 교장 선생님 만나러 갔대. 만약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기라도 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겠어. 언니 아까 우리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잖아. 진짜 퇴학당해서 모른 척하면 어떡해?”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어쩜 항상 이서 편을 들어? 걔는 우리한테 빌붙어서 피를 빨아먹을 생각인데 모른 척할 리가 있겠어? 지금 우리랑 밀당하는 거니까 더는 편을 들어주지 마.” “게다가 교장 선생님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말이 잘 통하는 분도 아니야. 평소 학교에도 거의 안 계시잖아. 계신다면 그건 꼭 만나야 할 귀한 손님이 있는 경우고. 오늘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계시긴 하지만 방금 경진에서 오신 귀한 분도 봤거든.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은 이서를 만날 시간이 없어.” 임효진은 아까 봤던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는 그녀의 일곱 오빠들보다 훨씬 잘생겼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높은 자리에 오래 있었던 거물인 게 분명했다. ‘연성에는 그런 젊은 거물이 없는데.’ 임효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오빠, 오늘 교무실에서 봤던 그 남자 말하는 거야? 그분 연정우 학부모 아니야?” 그녀가 알고 있기로 연정우는 그저 평범한 재벌이지, 엄청난 배경은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학부모가 어떻게 그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걸까? 임지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연정우도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까 앞으로 가깝게 지내지 마.” 그는 이어 설명했다. “예전에 형이랑 가람에서 파티에 참석했다가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어.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파티에 있던 사람들이 다 도련님이라고 부르더라고. 듣자 하니 그 사람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가람시의 재벌들을 몰락시킬 수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래.” 임효진이 놀란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고 두 눈에 욕망이 떠올랐다. “임지성, 빅뉴스야, 빅뉴스. 임이서가 진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대. 게다가 교장 선생님도 이서를 퇴학시키지 않았어.” 장하온이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임지성의 책상 앞에서 급정거했다. 그 말에 임지성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잠깐 넋을 잃었다가 이내 말했다. “말도 안 돼.” “진짜야. 교장 선생님이 부교장 선생님을 혼내면서 퇴학을 철회하라고 하셨어. 내가 직접 들었다니까.” 임효진도 깜짝 놀라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저 촌뜨기는 왜 알아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눈에 거슬리게 하는 거야?’ 하지만 겉으로는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임지성을 위로했다. “오빠, 걱정하지 마. 이서가 이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랑 떨어지는 게 싫어서일 거야. 진짜 퇴학당하면 우리랑 다시 만나기 어려워지니까.” 임효진과 임지성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임이서의 이름을 부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임이서가 임지성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임이서와 임지성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해도 임이서가 그저 그의 집 도우미라고만 생각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대부분이 재벌 집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 빌붙으려고 일부러 재벌 집 아이의 스터디 메이트로 이 학교에 보낸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임이서가 임효진의 스터디 메이트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의 말에 임지성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 그럼 계속 학교에 다니게 놔두지, 뭐. 하여튼 운은 참 좋아.” 임이서가 교과서를 안고 교실에 들어왔을 때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그녀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고 가끔 훑어보기도 했다. “저렇게 담력이 클 줄은 몰랐어. 진짜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가다니.” “교장 선생님을 어떻게 설득했나 몰라. 교장 선생님도 임씨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서 쫓아내지 않은 거겠지.” “당연하지. 배경도 없는 촌뜨기가 임씨 가문의 눈에 띄어 효진이의 스터디 메이트가 된 건 정말 횡재한 거나 다름없어.” “...” 임이서는 그들이 뭐라 수군거려도 못 들은 척하면서 맨 뒷줄에 있는 그녀의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임효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제집을 들고 임이서에게 다가가 부드럽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임이서, 네 문제집이야. 또 많이 틀렸어. 내가 다 고쳐 놨으니까 빨리 다시 한번 봐. 진도 놓치지 않게.” 수군거림의 방향도 그 말을 따라 바뀌었다. “효진이는 스터디 메이트한테 저렇게 잘해주는데 이서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아까 교무실에서 엄청 퉁명스럽게 쏘아대더라고.” “효진이가 다 안타까워. 성적도 엉망인 이서를 효진이는 어떻게든 끌어올려 주려고 애쓰고 있잖아. 근데 태도가 저게 뭐야?” 임이서는 눈을 치켜뜨고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임효진을 쳐다보았다. “맞는 답을 다 틀리게 고쳐놓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수작, 재밌어?” 임효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임이서, 천사의 눈물 때문에 모두가 널 오해해서 속상하고 화났다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한테 좋게 말할 수 없어? 난 진심으로 널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억울함과 인내심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은 마치 임이서가 그녀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임지성이 바로 다가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임이서, 주제를 좀 알아. 효진이가 틀린 문제를 고쳐줬으면 적어도 고맙다고 해야지.” 임이서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의 성적이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임효진의 도움이 컸다. 학습부장인 임효진은 모든 숙제와 시험지를 걷었다. 예전에는 왜 시험 때마다 답안지를 잘못 칠하고 숙제 공책이 이유 없이 사라지며 문제집의 문제가 늘 틀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임효진은 임이서를 위로하고 새 숙제 공책을 선물했으며 문제집의 틀린 문제도 고쳐주었다. 모두들 임효진이 그녀에게 너무 잘해주기에 그녀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로 시험지를 풀었는데 정답과 비교해 보니 만점이 나왔다. 평소의 실수나 누락도 없었다. 그제야 임효진이 임이서를 짓밟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수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방법으로 사람들이 그녀가 착하고 사심이 없으며 남을 돕기를 좋아한다고 여기게 만들었고 반대로 임이서는 성적도 나쁘고 고마운 줄도 모르며 이기적이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각인시켰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볼까? 내가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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