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그는 고개 숙여 나를 내려다보며, 마치 내가 분수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머지않아 곧 하연주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 잘 지내더라도, 그때가 되면 그는 하연주에게 평생 그녀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물론 나와 이혼할 것이다. 나는 더는 내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않기로 했다. 떠나려고 마음먹었으면 단호하게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떠나면서까지 그와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나 자신이 더 괴로워질 테니까. 나는 화가 난 그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우린 잘 지낼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이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나중에는 서방님께서 저에게 이혼을 제기할 겁니다.” 우혁수는 여전히 얼굴을 굳힌 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오? 아직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다른 사내라도 있는 것이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서방님은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갑자기 나는 다른 생각이 떠올라 그의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요?”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우혁수의 두 눈에는 당황스럽고 수치심에 잠긴 눈빛이 번쩍였다. 그의 수치스러운 눈빛에 나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럼 그렇지, 이 남자가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겠어? 영원히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체면이 하늘처럼 중요한 이 사람은 절대 말한 대로 할 거야. 스스로 자신의 얼굴이 깎이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사랑한다고? 영원히 그럴 수 없소. 우리 혼인에는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소. 지금은 폐하께서 영국공부를 지켜보고 있소. 폐하가 나더러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조사하게 한 건 바로 우리 둘의 혼인에 감정이 없고, 내가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오. 이혼은 가능하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평생 옥살이를 하길 바라면 그렇게 하시오.” 우혁수는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