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1화 그럼 개처럼 짖어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성훈에게 나는 그저 아는 사람 딸에 불과했다. 게다가 어머니와 인연도 깊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내게 자신의 행방을 숨긴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주성훈이 사라지자 강민지는 완전히 거리낄 게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강민지는 의기양양하게 허리를 굽히더니 손을 들어 내 뺨을 두 번이나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까 네가 나 한 대 때렸지? 나는 원래 받은 건 꼭 두 배로 갚는 성격이거든.” 나는 경호원에게 제압당한 채, 피할 수도 없어 그저 그녀의 손에 얼굴을 맡긴 채 맞아야만 했다. 강민지는 내 뺨을 후려친 뒤, 속이 좀 풀렸는지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곧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거만하게 날 노려보았다. “소은진, 예전엔 네가 날 깔봤겠지만 지금은 내가 널 발밑에 두고 있어. 그리고 내 아들은 네 외할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을 거야. 어때, 기분 안 좋아?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괴로워?” 나는 놀란 눈으로 강민지의 증오 어린 눈빛을 마주봤다. 예전의 그녀는 이런 본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보여서 나는 강민지의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집까지 데려갔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모든 걸 내가 본인을 깔봤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던 걸까? 강민지는 이를 악물고 말을 내뱉었다. “너 그때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너랑 네 엄마, 똑같은 인간들이야. 날 불쌍한 강아지 취급하면서 그냥 네 옆에서 들러리나 서라고 생각했겠지. 옷 몇 벌 사주고 학비 좀 대줬다고 내가 고마워서 네 말이나 들을 줄 알았어? 웃기지 마! 난 역겨울 뿐이야.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다 짐승들이야. 겉으론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사람 무시하는 놈들이지.” 나는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강민지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 “나는 한 번도 널 깔보거나 들러리 삼겠다는 생각... 한 적 없어.” 그때 정말 나와 엄마는 강민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잘해줬다. 만약 그녀가 우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면 그땐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강민지는 그런 불만을 내비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 물건을 당연하다는 듯 가져다 쓰고 우리의 호의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정말 나는 강민지의 본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납득할 수 없는 건 우리의 모든 호의를 받은 그녀가 엄마를 향해 ‘짐승’이라고 욕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선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지난 몇 년간 강민지의 횡포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이다. 도대체 강민지의 양심은 어디로 간 걸까? 깊은 밤 꿈속에서 저승사자가 찾아와 죽음으로 내모는 게 두렵지도 않을까? 강민지는 눈을 반쯤 뜬 채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며 마치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듯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직접 빼앗으면 되는 거야. 너희한테는 죽어도 안 받아.” 그녀는 그 말이 마치 멋진 선언이라도 되는 양 스스로 도취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강민지가 말하는 빼앗는다는 건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고 엄마를 죽게 만든 뒤 이젠 나까지 제거하려는 걸 의미했다. 그토록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짓을 해놓고 그걸 자랑처럼 내세우는 게 나는 한심했다. 내가 비웃듯 미소를 짓자 강민지는 그걸 눈치챘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에어컨 리모컨을 집어 내 머리 쪽으로 거칠게 던졌다. “이년아, 뭐가 그렇게 웃겨! 네 엄마가 자기 남편도 못 지킨 게 문제지. 네 아빠가 날 좋아했는데 그게 내 잘못이야?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나는 고개를 비켜 리모컨을 피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일었다. 그래, 물론 강민지만의 잘못은 아닐지 모른다. 소석진을 유혹한 건 명백히 그녀의 잘못이지만 강민지가 내 집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나였다. 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탓이다. 그러니 엄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토록 소석진을 사랑했던 엄마는 그가 가난한 시골 청년이던 시절부터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택했다. 외할아버지는 화림에서 손꼽히는 재벌이었고 외동딸이었던 엄마를 너무도 아꼈지만 결국 엄마의 간절한 부탁에 그 사랑을 허락했다. 결국 엄마의 그 일편단심은 소석진의 배신으로 돌아왔다. 그 사실이 가슴 깊숙이 치밀어 올라오며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북받쳤다. 엄마는 평생 단 한 번도 누구를 해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늘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누구보다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결국 얻은 게 뭔가?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 하나 지켜내지 못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강민지에게 끌려와 치욕을 당하고 있다. 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지? 정말 이 세상은 악한 자들이 승리하는 곳인가? 강민지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날 협박하고 있었다. “너 한번 맞혀봐? 내가 널 진짜 죽일 것 같은지.”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민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걱정 마. 죽이고 싶긴 한데 지금은 아니야. 나는 너를 오래... 아주 천천히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게 만들어줄 거야.” 그녀의 그 악마 같은 웃음소리에 알 수 없는 오한이 몸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강민지는 분명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 방법을 수없이 고민해 온 게 분명했다. 그때 그녀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너 정신병 걸렸잖아. 오늘 당장 널 낙산 병원에 보내줄게. 거기서 평생 살아. 내가 좋은 사람 붙여서 잘 보살필 테니까 걱정 마.” 낙산 병원은 화림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병원이었다. 강민지의 속셈은 바로 그거였다. 그녀가 말하는 ‘보살핌’이라는 건 말 안 해도 뻔했다.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절망과 분노가 동시에 몰려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 너도 알잖아! 너랑 아버지는 벌받는 게 무섭지도 않아?” 그러자 강민지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벌? 무서운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다 저질렀는데 하나 더 늘어난다고 달라지나?”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강민지는 이미 우리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쯤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네가 날 감옥에 보내? 그럼 난 널 정신병원에 보내줄게. 거긴 감옥보다 더 지옥 같아. 환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때리고 밤낮으로 괴롭히지. 난 그렇게 너를 부숴버릴 거야. 너는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해. 그리고 내가 오빠랑 결혼하는 것도 봐야 되고 우리 아이가 네가 받을 유산을 물려받는 것도 봐야 해.”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강민지를 응시했다. 사실 직접 죽이는 것보다 그 방식이 훨씬 더 끔찍했다. 그녀 또한 그걸 알았기에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주먹을 꽉 쥐는 것뿐이었다. 정말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강민지는 천천히 걸어 나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더 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내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난 강민지의 눈과 마주쳤고 그 눈빛 속엔 증오와 광기가 가득했다. 나는 두려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뾰족한 하이힐을 들어 내 손가락 위에 그대로 찍어 누르며 잔인하게 짓밟았다. 이내 가느다란 힐이 손가락뼈를 뚫을 듯 깊이 파고들었고 붉은 피가 손등을 타고 줄줄 흘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나는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는 것 같았고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곧 기절할 것 같은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그러자 강민지는 내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다들 너 잘났다고 칭찬하더라? 제국대 의대도 들어갔다면서 장하다 어쩐다하면서 말이야. 그러니 지금 네 손을 망가뜨리면 넌 이제 의사도 못 돼. 수술도 못 할 거야. 넌 이제 끝장이야.”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의사가 되는 건 내 인생의 꿈이었다. 하지만 손이 망가지면 그 꿈도 끝장이다.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강민지, 제발... 예전에 우리가 친구였던 거 생각해서라도 이러지 마. 제발 날 봐줘.” 하지만 그녀는 내 손가락을 다시 한번 짓밟으며 싱긋 웃었다. “너 원래 기세등등하잖아? 나 미워하잖아? 그런데 이젠 나한테 빌어? 너 스스로 안 부끄러워?” 나는 심각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점점 의식은 흐릿해졌고 오직 한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손은 잃으면 안 돼.’ 나는 땅에 엎드린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머리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야. 날 살려줘.” 강민지는 느긋하게 몸을 숙이더니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럼 개처럼 짖어봐. 진짜 잘 짖으면 생각해 볼게.”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나는 강민지의 잔인하고 비열한 웃음을 보았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