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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정말 개처럼 짖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모욕적인 순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만약 강민지의 말을 거부하면 내 손은 정말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망설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 강민지의 시선을 마주쳤을 때, 나는 깨달았다. 강민지의 눈빛 속엔 혐오, 증오, 원한이 가득했다. 그 눈빛은 나를 짓밟겠다는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내가 개처럼 짖는다 해도 그녀는 결코 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걸 핑계로 날 조롱하고 장난감처럼 다룰 뿐.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자 그녀는 이내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 손가락 위로 거칠게 발을 내리눌렀다. “이 시*년아, 그냥 죽어버려!” 나는 너무 아파서 이가 달달 떨렸지만 강민지는 멈추지 않았다. 굽 있는 구두 뒤꿈치로 내 손가락을 더 세게, 더 깊이 짓밟았다. 나는 악에 받쳐 이를 악물었지만 그 고통은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신경을 건드린 건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무서웠던 건 두 손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나는 끝내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강민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차에 태워. 어서.” ... 눈을 떴을 때, 나는 차 안에 있었다. 양옆엔 여전히 보디가드가 버티고 서 있었고 나는 죄수처럼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는 분명 낙산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뼈와 인대가 끊어진 듯, 형태조차 이상했고 상처는 여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 손 정말 다시 쓸 수 있을까?’ 내 꿈과 미래, 모든 것이 이 피투성이가 된 손에서부터 시작해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온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는 멈췄고 보디가드가 내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사이로 높은 담장과 그 뒤편의 건물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리조트 같기도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가 바로 낙산 병원이라는 것을 말이다. 화림 사람들에게 낙산 병원은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곳이다. 정상인이라면 평생 가볼 일이 없는 그 장소. 나조차 한 번도 와본 적 없던 이곳에 이제 나는 강제로 들어가야 한다. 이곳은 말 그대로 ‘감옥’이었고 나는 ‘죄수’였다. 그리고 죄목은 단지 강민지에게 미움을 샀다는 것뿐이었다. 차는 철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섰고 몇 번의 굽은 길을 지나 마침내 어떤 건물 앞에서 멈췄다. 건물 외관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벽면을 훑었다. 멀리서 보면 꼭 귀신의 형체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뜩했다. 더 무서웠던 건 건물 안에서 새어 나오는 창백한 형광등 불빛이었다. 그 빛 아래엔 단 한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몸이 살짝 떨렸지만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의대를 다니는 사람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해부학 실습을 했고 밤중에 홀로 실험실에서 시신과 함께 있어 본 적도 있다. 유령보다 무서운 건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인간, 그건 강민지였다. 이번엔 그녀가 직접 따라오진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히 강민지는 보디가드들에게 지시를 내려뒀을 것이다. 나를 어떻게든 부숴놓으라고. 보디가드는 거칠게 내 등을 밀며 차에서 내리게 했다. 나는 그 손에 붙잡힌 채로 그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복도엔 여전히 파리한 형광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고 양옆의 문 너머에선 괴성과 비명, 울부짖음이 틈틈이 흘러나왔다. 그 음산한 소리는 적막한 밤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들렸다.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그냥 귀신 들린 폐가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곧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나는 어느 방 안으로 밀쳐졌다. 사방이 막혀 있고 단 하나의 작은 창문만 달린 폐쇄된 공간, 불은 꺼져 있었고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때, 보디가드 중 한 명이 낮게 말했다. “잘 지켜. 절대 도망 못 치게 해.” 그러자 다른 이들도 무겁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몇 시간마다 한 번씩 사정없이 때리라고 하셨어. 교육 좀 시켜주라고. 다만 죽이지는 말고 천천히, 오래오래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해.” 나는 그 말에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역시나 강민지는 그저 내 손만 망가뜨리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날 천천히 망가뜨리려 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열 개 모두 퉁퉁 부어올랐고 건드리지 않아도 통증이 뇌를 찌를 정도였다. 머리는 띵하고 정신은 점점 멀어져갔다. 무엇보다 이 방은 창 하나뿐인 감옥이었고 바깥에선 누군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눈을 적응시킨 뒤, 나는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어봤다. 방 안엔 아무런 가구도 없었다. 그저 텅 빈 공간 속, 나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묵묵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한밤중, 차가운 물이 온몸을 덮쳤다. 초여름이라 해도 밤공기는 서늘한데 그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자 나는 그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겼고 나는 질질 끌려 바닥을 몇 미터나 끌려갔다. 그리고 발끝이 내 망가진 손가락 위로 올라왔다. “악!” 누군가의 구두 굽이 내 상처 위를 거칠고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밀려오는 고통을 억지로 버티려 했지만 비명은 절로 새어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까 복도에서 들리던 그 끔찍한 비명들이 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울음을 삼켜보려 했지만 고통은 모든 걸 무너뜨렸다. 콧물과 눈물, 숨소리마저 엉망이 됐고 결국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따뜻한 이불과 부드러운 매트리스. 햇살은 하얀 커튼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들었고 방 안은 고요하고 포근했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여긴 낙산 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체 여긴 어디지?’ 나는 혼란에 휩싸인 채 벌떡 일어나 앉았고 그제야 내 손이 깨끗이 붕대로 감겨 있다는 걸 알아챘다. 붕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상쾌한 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쓰라리긴 했지만 이 약의 차가운 감촉은 어쩐지 너무도 안도감을 줬다. 더 놀라운 건, 내 옷까지 갈아입혀졌다는 사실이었다. 전엔 피와 먼지, 구두 자국으로 더러워진 옷이었는데 지금은 깨끗한 하얀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방 안은 고급스럽고 단정하게 꾸며져 있었고 침대 머리맡엔 흰 백합 한 다발이 꽂혀 있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이건 너무 이상했다. 강민지가 날 이렇게까지 배려할 리 없었다. ‘설마 꿈인가?’ 나는 멍한 얼굴로 침대 머리맡에 앉아 도무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한 명은 상냥한 미소를 지닌 여인, 다른 한 명은 청초한 인상이었다. 그 중 미소 짓던 여자가 나를 향해 다가와 말했다. “이제 깨어나셨네요. 제가 약을 갈아드릴게요.” 두 사람은 손놀림도, 말투도 조심스러웠고 약을 바르며 너무도 다정하게 내 손을 감싸주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입을 떼자마자 내 목소리가 다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어젯밤 울고 소리쳤던 탓일 게 뻔했다. 그러자 청초한 여자가 곧바로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 내게 건넸다. 컵을 입 가까이에 가져다주는 모습이 너무도 친절하고 섬세했다. 나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 이 배려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 왜 이들은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그러자 미소 짓던 여자가 내 물음을 대신해 대답했다. “여긴 주씨 저택입니다. 소은진 씨께선 지금은 그냥 푹 쉬시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저희한테 말씀만 주세요.” 주씨 저택?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주성훈... 그분 댁인가요?” 내가 아는 사람 중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주성훈. 그는 실력도, 인맥도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제도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내가 낙산에 잡혀간 걸 알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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