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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나를 구해준 사람은 주성훈

칼이 닿는 순간, 강민지의 손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녀의 비명은 찌를 듯 날카로웠고 고요한 저택 안에서 더욱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내가 잔인해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강민지는 항상 먼저 날 해쳤다. 만약 주성훈이 날 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손은 이미 망가져 있었을 것이다. 악에 받친 강민지가 이를 빠득빠득 갈며 소리쳤다. “주 대표님한테 빌붙은 주제에 뭐 그렇게 잘난 척해? 너 같이 못생기고 소심한 년이 감히 주 대표님 옆에 설 자격이 있기나 해? 두고 봐, 너도 곧 버려질 거야!”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손바닥에 다시 한번 칼을 찔러 넣었다. 사실 강민지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거리낌 없이 복수할 수 있는 건 여기 주경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경민은 주성훈이 내 곁에 붙여둔 사람이니 결국 나는 주성훈의 힘을 빌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강민지와 말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질투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꼴을 그냥 구경하는 편이 더 속이 시원했다. 강민지는 여전히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쳤다. “구소연 씨가 주 대표님의 약혼녀인 거 몰라? 그렇게 딱 달라붙어서 구소연 씨까지 화나게 할 생각이야?” 방금 전 기절해 있던 그녀는 구소연이 이미 주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것도, 주성훈과의 약혼이 해제됐다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굳이 그걸 알려줄 생각도 없었기에 그저 무심하게 그녀의 욕설을 흘려들었다. 강민지가 기진맥진해 바닥에서 신음만 내뱉게 되었을 때야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거, 구소연 씨가 너한테 알려준 거 맞지?” 그러자 강민지가 코웃음을 쳤다. “흥, 화림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어디 있어?” 애매모호한 대답에 나는 곧장 그녀의 손가락을 발로 밟았다. “진실을 말 안 하겠다는 거네?” 이미 몇 번이나 칼에 찔린 손이었다. 그 위로 내 발이 올라가자 심각한 고통에 강민지는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곧 나는 천천히 발을 거두었다. “이제 말할래?” 숨을 몰아쉬던 강민지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맞아, 맞다고! 이제 됐어?”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구소연은 강민지를 이용해 나를 쫓아내려 한 것이다. 난 주경민을 슬쩍 돌아봤고 이내 그의 표정이 살짝 변해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곱씹는 듯했다. 내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셈이었다. 주성훈은 분명 나를 돕고 있는데 구소연은 오히려 강민지에게 정보를 흘렸다. 그건 곧, 그녀가 주성훈에게 맞서는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둘 사이를 틀어지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구소연이 소석진이나 강민지와 또 다른 일들을 약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건 주성훈에게 경고가 될 일이고 주경민이라면 반드시 전할 것이다. 강민지는 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을 이기지 못했는지 다시 기절했다. 나는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그냥 풀어줄까? 아니면 이 집에 가둬둘까?’ 솔직히 강민지와 소석진이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넣지 않았다면 죽으라는 말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정말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짜 죽일 생각은 없었고 최대 목표는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어떻게 할지 나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경민이 내 고민을 알아챈 듯 먼저 말했다. “소은진 씨, 올라가서 쉬시죠. 나머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주경민은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대답을 마친 나는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라가기 전,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주경민이 이미 부하들에게 강민지를 깨우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눈을 뜬 강민지는 눈동자 가득 독을 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나를 물어뜯을 듯했다. 나는 묘하게 기분이 불편했다. 구소연은 아예 나를 죽이려 들었고 강민지는 나를 산산조각 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려 했다. 둘 중 누가 더 독한지 말하기 어려웠지만 분명한 건 둘 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 나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미 원수가 된 이상, 나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다행인 건 아직 주성훈이 내 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왜 나를 이렇게 챙기는지, 우리 엄마가 주성훈에게 무슨 도움을 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 고마웠고 언젠가 반드시 보답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2층 발코니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보디가드들이 강민지를 차에 실어 보내는 모습이 보였고 이내 차는 저택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답하니 주경민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소은진 씨. 아까 잠시 외출을 했는데... 다치신 데는 없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경민이 제때 돌아온 덕분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고마워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계속 말했다. “그리고 소은진 씨라고 부르지 마시고 그냥 은진 씨나 진이 씨라고 불러요. 이름 석 자 다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해 보여요.” 내 말에 주경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나는 웃으며 물었다. “어젯밤 혹시 경민 씨가 절 정신병원에서 데려온 건가요?”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도련님께서 직접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주성훈은 제도에 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사실에. “도련님께서 일을 처리하시다 소식을 들으시고 바로 추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직접 날 구하러 왔단 말인가?’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에는 감동만 있는 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함께 일었다. “도련님은 오늘 제도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놀라 그를 보았지만 주경민은 더 말하지 않았다. “푹 쉬시죠.” 그 말은 주성훈이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란 뜻처럼 느껴졌다. 이후로 정말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경민도 가끔만 보였지만 대신 보디가드들을 붙여 두어 마음이 놓였다. 의사는 이틀에 한 번씩 찾아와 내 손을 진찰했다. “반 년 정도만 더 회복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동안 저택 안에서 지내며 두 명의 여자와 아주머니가 틈틈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줬다. 아마 주성훈의 위압감 덕분일 것이다. 소석진과 강민지, 그리고 구소연 중 누구도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며칠은 그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소석진과 강민지에게 잡힌 약점은 아직 해결하지 못했고 학교에도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붙잡힐까 봐 집으로 가는 건 더더욱 두려웠다. 그동안 나는 고민아와 양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고민아에겐 집에 일이 좀 생겼다고만 말했지만 양 선생님은 어느 정도 짐작한 듯 나를 오래 위로했다. “내가 학교에 얘기해 볼게. 학적은 남겨둘 테니 일이 해결되면 돌아오렴.” 그 말이 너무 고마웠던 나는 바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후 이틀간 나는 논문을 써서 양 선생님께 보냈다. 아쉽게도 임상 실험을 할 수 없어 보고서는 제출하지 못했다. 논문을 마친 후, 나는 문득 소석진과 강민지의 결혼 소식을 떠올렸다. 도우미들에게 물으니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했다. 강민지가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결혼식을 미루지 않는다니. 그건 곧, 엄마의 얼굴에 대놓고 침을 뱉는 일이었기에 나는 절대 순순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없다. 결국, 또다시 주성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였다. 소석진이 강민지를 얻고 심씨 가문과 연결됐어도 주성훈에게는 초대장을 보낼 것임을. 그는 강한 자에게는 절대 맞서지 못하는 비겁한 인간이니까.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주성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행방을 주경민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참견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그만뒀다.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마당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났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발코니로 나갔다. 그 순간, 차에서 내리는 주성훈이 보였다. 마당의 노란 조명이 그를 감싸자 순간 그는 마치 은은한 빛 속에서 걸어 나오는 신 같았다. 하지만 그의 키와 존재감은 그 어떤 빛보다도 강렬해 시선을 뗄 수 없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봤고 마침 그때, 주성훈도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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