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소 대표님을 위한 깜짝 선물이에요
어이가 없는 나는 현재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입만 딱 벌렸다.
소석진의 인간말종 같은 면모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추악함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무대 위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하객들 앞에서 내가 정신병자라고 말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나를 정신병원에 넣을 생각인 소석진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나 온몸이 떨렸고 진정할 수가 없었다.
주성훈이 내 손을 꽉 잡더니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소석진은 지금 그 진단서를 객석으로 돌리며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려 하고 있었다.
소석진의 옆에 있던 강민지는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본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한 바퀴 돈 진단서가 주성훈의 손에 닿았을 때 소석진이 다시 말했다.
“주 대표님, 보셨겠지만 제 딸은 병이 있습니다. 주성훈 씨의 사랑을 받은 건 제 딸의 복이지만 한마디 충고를 드리자면 은진이가 정신병자라 발작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를 악문 나는 화가 나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조용한 주성훈은 매우 차분해 보였고 얼굴에서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소석진은 계속해서 주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은진이의 아빠이자 보호자입니다. 은진이가 치료받도록 병원에 보내는 걸 막지는 않으시겠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주성훈과 나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나에게 병이 있으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석진의 행동이 어쩌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당연해 보일 것이다.
단지 외부인일 주성훈이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겠는가?
정말로 계획만큼은 정말 잘 세웠다.
하지만 소석진의 성격상 이런 용기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누가 소석진에게 이런 용기를 준 걸까?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른 나는 저도 모르게 주성훈의 왼쪽을 바라보았다.
빈 잔을 만지작거리는 구소연은 아주 태연자약했다.
역시 구소연이었다.
주성훈과 대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주성훈 곁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소석진을 부추긴 것이다.
게다가 소석진은 도덕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다. 나의 보호자였고 정신병 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니 주성훈이 어찌 반대할 수 있겠는가?
순간 초조하고 화가 났다.
소석진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에 분노가 치밀었고 주성훈까지 피해를 준 것에 화가 났다.
용기를 내어 주성훈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주성훈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 왠지 불안했다.
나를 내버려 둘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소석진 때문에 나를 성가시게 여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미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던 소석진은 손에 든 마이크를 주성훈 앞으로 내밀며 다시 말했다.
“주 대표님, 제 딸을 정신병원에 보내 치료받게 하는 데 이의 있으십니까?”
주성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손을 놓지도 않았다.
단지 약간 고개를 들어 소석진을 바라보았다.
소석진이 서 있고 주성훈이 앉아 있었지만 그의 시선에 소석진은 겁에 질린 듯 몇 걸음 물러났다.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음악도 어느새 멈췄다.
현장은 결혼식이라기보다는 영안실처럼 조용했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소석진이 다시 묻자 주성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단서가 진짜인가요?”
주성훈의 말투는 마치 평소 날씨를 묻는 것처럼 평온했지만 소석진은 불가마에 들어간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네... 네...”
주성훈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단 세 글자뿐,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석진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는 듯 허둥거렸다.
그러고는 구소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소연은 자신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걸 주성훈에게 들키는 게 두렵지도 않은 듯 소석진을 위해 중재했다.
“성훈 씨, 이건 소씨 가문의 집안 문제야,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주성훈의 어깨에 붙어 말하는 구소연은 표정과 행동 모두 친근해 보였다.
하지만 주성훈이 구소연을 쳐다보지도 않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구소연은 분명 화를 낼 것이고 아마 그 화를 나에게 돌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을 붉히더니 분노와 원한이 담긴 눈길로 나를 훑었다.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주성훈은 진단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은진이 일은 잠시 후에 얘기하죠. 오늘은 소석진 대표님에게 경사스러운 날이니 내가 준비한 큰 선물, 지금 보여드리죠.”
이 말에 선물이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순간 소석진은 바짝 긴장했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소석진의 팔짱을 끼고 있던 강민지는 적절한 타이밍에 나서며 주성훈에게 애교를 부렸다.
“주 대표님, 평소 우리 석진 오빠를 많이 아끼는 만큼 선물도 아주 귀중한 거겠죠. 그냥 우리끼리 보는 게 어때요? 다들 주 대표님의 선물을 탐낼까 봐 걱정이 되네요.”
입담이 좋은 강민지는 아주 예쁘게 포장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강민지가 소석진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임을 단번에 알았다.
주성훈은 단 한 번도 소석진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저 소석진이 체면을 버리고 붙어 다닌 것이다.
강민지가 나서서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해도 주성훈이 소석진의 체면을 봐줄 리가 없었다.
역시나 강민지의 말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주성훈은 나와 잡은 손을 들어 소석진에게 말했다.
“은진이는 내 여자친구니 내가 돌볼게요. 소 대표님은 둘째 아이나 걱정하세요.”
소석진의 둘째 아이라면 바로 강민지의 배 속의 아이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강민지의 배로 쏠리자 강민지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아마 내가 일부러 도하민을 들먹이며 그녀를 겁주던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사실 나도 약간 의아했다.
주성훈이 갑자기 강민지의 아이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빠르게 반응한 강민지는 즉시 몸이 안 좋은 척하며 흐느껴댔다.
“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 쉬고 싶어요...”
강민지를 항상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소석진은 즉시 그녀를 안고 주성훈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주 대표님, 보시다시피...”
주성훈이 말했다.
“의사를 데려왔으니 진찰받아 보세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경민이 현장에 나타났다. 뒤에는 의료진이 줄지어 서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주변 하객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주성훈이 결혼식에 의사까지 데리고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얼굴이 더욱 창백해진 강민지는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사가 다가와 즉시 진찰하자 강민지는 주성훈을 의식한 듯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석진은 감히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주성훈이 주경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 대표한테 줄 깜짝 선물을 보여줘.”
그 말에 주경민이 손짓을 하자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 강민지와 도하민의 사진이 나타났다. 대부분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나체 사진으로 전에 내가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었다.
현장이 술렁였다.
몇 장만 보여주었는데도 소석진의 얼굴은 벌써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주성훈이 미소를 지었다.
“소 대표님, 정말 대인군자시군요. 친딸은 정신병원에 보내고 남의 아이를 기꺼이 키우겠다고 하다니. 소 대표님 같은 분은 처음이네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석진이 강민지를 바라보자 강민지는 즉시 울음을 터뜨렸다.
“석진 오빠, 이 사진들 다 가짜예요! 난 오빠를 배신한 적 없어요. 이 사람들이 날 모함하는 거예요. 오빠, 내 말 믿어줘요...”
강민지는 큰 누명을 쓴 듯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소석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응, 네 말 믿어!”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런 상황에도 소석진은 여전히 강민지를 선택했다. 정말로 강민지를 많이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주성훈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아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성훈이 다른 수를 더 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 목소리는 도하민이었고 여자 목소리는 강민지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