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협박에 의한 허위자백
주성훈은 국장의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제 변호사가 밖에 있습니다. 변호사 얘기하시죠.”
나는 크게 놀랐다.
그가 의사뿐만 아니라 변호사까지 데리고 온 사실에.
국장은 더 다급해져 억지웃음을 지었다.
“대표님, 넓은 아량으로...”
하지만 주성훈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
그때 소석진과 강민지가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들어왔다.
강민지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걱정스러운 척 말했다.
“은진아, 괜찮아? 미안해. 나랑 오빠가 늦었어.”
소석진은 주성훈에게 인사했다.
“대표님, 어쩐 일로 경찰서까지 오셨습니까?”
평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주성훈의 자신의 ‘형’이라고 떠벌리지만 정작 주성훈 앞에서는 늘 다른 사람들처럼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화림에서 손꼽히는 부자라 해도 화림은 지방 도시일 뿐. 제도의 주씨 가문 앞에서 소석진이 뭘 할 수 있겠나.
주성훈은 그를 한번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석진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워낙 낯 두꺼운 사람이라 곧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다.
“네가 민지를 싫어한다 해도 뱃속의 아이까지 해칠 수는 없어! 그 아이는 네 동생이자 한 생명이다!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가 있냐!”
단 한마디로 내 죄를 확정 지으며 주성훈에게 전부 내 탓이라고 알린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주성훈 뒤로 살짝 숨어 두려운 척했다.
이상하게도 주성훈은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예전에 우리 엄마에게 빚을 졌다고 한 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방금 날 구해줬기 때문일까.
통통한 국장이 옆에서 소석진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오히려 주성훈에게 아부하듯 말했다.
“대표님, 제 딸이 철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혼 좀 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외할아버지 재산을 내가 가져갈까 두려워 강민지와 짜고 이런 함정을 판 거다.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그러자 주성훈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강민지를 바라봤다.
“당신 말로는 은진이가 아이를 거의 죽일 뻔했다는 거죠?”
그러자 소석진이 먼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도우미가 아니었으면 민지와 아이가 위험했을 겁니다.”
강민지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대표님, 은진이 잘못이 아니에요. 요즘 기분이 안 좋으니 이해해요. 우리 가족이잖아요, 제가 고소 같은 건 안 할 거예요.”
역시 강민지는 소석진보다 훨씬 눈치가 빨랐다.
주성훈 앞에서 착한 척하며 자기의 넓은 아량까지 부각했다.
곧 주성훈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 눈빛 속 감정은 읽기 어려웠다.
사실 나는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방금 경찰들에게 강압 심문을 당했을 때도 그를 부를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주성훈은 갑자기 나타나 마치 나를 두둔하려는 듯 행동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먼저 말했다.
“아저씨, 제 결백을 증명할 게 있어요.”
그 말에 주성훈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응?”
나는 소석진과 강민지를 한 번씩 훑어봤다.
둘 다 놀란 기색과 경계심을 동시에 드러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낮게 말했다.
“혹시 이 컴퓨터를 써도 될까요?”
국장은 친절하게 바로 허락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소석진 편이던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 건 오로지 주성훈이 무서워서였다.
나는 그런 인간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다루자 곧 화면에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강민지가 나를 서재로 불러들인 뒤 있었던 일 전부가 기록된 장면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나는 먼저 말했다.
“서재에 CCTV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강민지를 밀지도, 아이를 해칠 의도도 없어요. 전부 강민지의 연기였고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겁니다.”
그 말에 강민지 얼굴은 금세 굳었고 소석진의 손을 잡고 다급히 변명했다.
“이 영상은 조작된 거예요! 그런 말 한 적도, 은진이를 해칠 생각도 없었어요! 오빠, 절 믿어주세요.”
소석진은 그녀 손등을 쓰다듬으며 나를 노려봤다.
“서재에 언제 CCTV를 설치한 거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재는 그의 독점 구역이었고 엄마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집에 고양이를 키워서요. 장식품 깨뜨릴까 봐 달아놨어요.”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소석진은 국장을 향해 소리쳤다.
“사생활 침해로 고소하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국장에게 물었다.
“자기 집에 CCTV 설치하는 게 불법인가요?”
국장은 주성훈을 한번 쳐다보고 즉시 답했다.
“물론 불법 아닙니다!”
소석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주성훈은 나를 보며 말했다.
“증거가 있는 이상, 넌 무고한 거야. 하지만 방금 넌 거의 협박을 당할 뻔했어.”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국장을 흘겨봤다.
그러자 국장은 식은땀을 훔치며 다급히 말했다.
“제가 꼭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주성훈이 시큰둥하게 그를 보자 국장은 더듬거리며 자백했다.
“저... 저 사람들이 돈을 줬습니다.”
그러자 소석진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무언가 반박하려다 주성훈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허튼소리 하지 마시죠!”
소석진이 소리 지르자 강민지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성훈을 향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오해예요.”
나는 두 사람을 비웃듯 바라봤다.
주성훈이 판단을 내릴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는 그들을 무시하고 나에게 말했다.
“가자. 변호사에게 맡기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강민지는 더 크게 울며 말했다.
“그 영상은 가짜예요.”
“그럼 감정 맡겨.”
나의 단호한 말에 강민지는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은진아, 네가 나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주성훈의 표정이 잔뜩 굳어버리자 국장은 그걸 눈치채고 강민지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두 사람 체포해!”
형세가 불리해지자 강민지는 배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배가 너무 아파요.”
주성훈은 무심하게 말했다.
“마침 의사가 있으니 진료받으세요.”
그 말에 강민지의 울음소리조차 잦아들었고 곧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마침 변호사도 도착했다.
주성훈은 짧은 지시를 남기고 나에게 말했다.
“가자.”
“네.”
우리가 떠나려하자 소석진이 가로막았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주성훈에게 말했다.
“은진이가 그냥 저랑 투정 부린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주성훈은 냉랭하게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소석진은 곧 나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넌 정말 날 그렇게 미워하냐? 난 네 아버지야. 날 쓰러뜨려서 뭐가 좋냐?”
나는 고개를 숙이고 겁먹은 척 주성훈 뒤로 숨었다.
그러자 주성훈이 국장을 쳐다보았고 국장은 바로 명령했다.
“저 사람 수갑 채워!”
주성훈이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자 나는 급히 뒤따랐다.
이미 밤 11시, 초여름의 밤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거리엔 제도의 번호판을 단 차들이 서 있었고 분명 주성훈을 위해 대기 중일 게 뻔했다.
“아저씨.”
내 목소리에 그는 멈춰 서서 돌아봤다.
그리고 난 그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성훈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그렇게 잠시 눈을 마주칠 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