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뭐 하러 왔어?
거울 속 그녀는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빛은 조금 누렇게 떠 있었고 몸매도 평범했다.
지금의 백아린이 모든 것을 되찾으려면 너무나 힘든 싸움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변해야만 했다.
백아린은 옷장을 뒤져 분홍빛 운동복 한 벌을 꺼내 입고 머리는 높게 묶었다.
그리고 추금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레 집을 나섰다.
6월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더웠고 거리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몇몇 작은 아침 식당만 문을 열었을 뿐, 조용하고 평화로운 소도시의 아침이었다.
백아린은 조깅을 시작해 강가 쪽으로 달렸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낯설게 스쳐갔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는 살집이 있었지만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았다.
통통한 얼굴 덕에 귀여운 인상도 있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금방 묻혀버릴 평범함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금성으로 돌아가 백씨 가문의 일원이 되려면 그녀는 누구보다 눈부시고 완벽해야 했다.
그래야 백시연이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빛을 잃게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강태준은 워낙 뛰어난 남자였다. 그의 곁에 서려면 그녀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최고 부자의 아내 자리.
그저 차지하는 걸 넘어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자리였다.
그 생각을 하며 백아린은 한 시간 넘게 달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추금선은 칼국수를 끓이고 있었고 운동복 차림인 그녀를 보고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아린아, 너 뛰다 왔니?”
“네, 왜요?”
백아린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추금선은 눈을 비비며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의심했다.
늘 7시 반까지 침대에서 뒹굴던 게으른 백아린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 뛰다니, 눈앞의 그녀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 같았다.
그때, 문 밖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아, 준비 다 됐어? 데리러 왔어.”
그 목소리는 도윤재였다.
백아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어?’
백아린은 차가운 기운이 눈동자에 서리며 성큼성큼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린아, 그 애한테도 아침 준비해 줄까?”
추금선이 뒤에서 물었다.
평소 백아린은 매일 추금선에게 도윤재 아침을 꼭 챙기라 명령했다.
거기에 계란 프라이 등 여러 가지 반찬도 곁들여야 했고 만족하지 않으면 잔소리도 퍼부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아니에요, 할머니. 오늘부터는 안 해도 돼요. 밥 다 되면 먼저 드세요. 나가서 걔랑 얘기 좀 할게요.”
‘얘기 한다고?’
추금선은 의아해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린이가 저 애랑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백아린이 문을 열고 나서자 도윤재는 자전거를 끌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교복을 입고 있었고 온화하고 깔끔한 얼굴이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그의 몸을 비추며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키는 180cm 정도로 강태준만큼 강렬한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마치 옆집 오빠 같은 친근한 매력이 있었다.
이토록 뛰어나고 첫사랑 같은 남자를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백아린은 알고 있었다.
그의 겉모습 뒤에 얼마나 독한 내면이 숨겨져 있는지.
그가 가슴에 칼을 꽂았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백아린은 손을 꽉 쥐고 차갑게 말했다.
“뭐 하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