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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훈남의 민낯

“닥쳐!” 백아린은 싸늘한 눈빛으로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입만 열면 내가 뻔뻔스럽다는 둥, 천박하다는 둥 하는데 불량배랑 모텔에 간 걸 직접 보기라도 했어? 옷을 홀딱 벗고 외간 남자와 침대에서 뒹군 모습을 목격하고 하는 소리야?” 쉴새 없이 퍼붓는 질문은 단호하고 목소리에 힘이 넘쳤으며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당당하게 서 있는 백아린의 모습은 마치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을 연상케 했다. 학생들은 그녀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의아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백아린은 도발적인 옷차림과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강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 걸까? 이때, 백아린이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도윤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 피해자인 척 연기해도 네 진면목을 밝혀낼 방법은 있거든? 내가 실험용 쥐처럼 평생 손아귀에 놀아날 거라는 착각은 버려. 어젯밤 나한테 보충 수업 가자고 했을 때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영상으로 남길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네.” 말을 마치고 교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해제했다. 도윤재의 안색이 돌변했다. ‘망할 계집애, 영상까지 찍었어? 오늘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어찌 됐든 절대 영상을 재생하게 놔둘 순 없었다. 이내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른 채 애써 다정하게 타일렀다. “아린아, 장난은 이제 그만. 너한테 무슨 영상이 있다고 그래? 내가 이미 다 인정하고 대신 책임까지 졌잖아. 교장 선생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말을 이어가면서 재빨리 백아린의 손에 든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몰래 호신술을 배운 덕분에 민첩한 동작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낚아챘다.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백아린이 희한한 각도로 손목을 틀자 휴대폰이 다시 그녀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다리를 움직여 뒤로 2m 정도 물러났다. 도윤재는 의아한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백아린의 반응이 언제 이렇게 빨라진 거지? 지금까지 그녀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날카로운 눈빛에 살기가 스쳤지만 시종일관 젠틀한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가 백아린의 머리를 쓰다듬는 척 손을 뻗었다. “아린아, 작작 좀 해. 계속 이러면 나도 널 지켜줄 수가 없어.” 부드러운 말투와 달리 그녀를 기절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정신만 잃게 한다면 어수선한 틈을 타서 휴대폰을 망가뜨려 모든 걸 덮을 수 있다. 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손바닥을 보자 백아린의 갈라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내 몸을 낮추고 긴 다리를 휘둘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도윤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도윤재는 고통에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백아린은 발로 그의 손을 밟고 도도하게 내려다보았다. “감히 나한테 손찌검하려고? 내가 한창 태권도 배울 때 넌 코 닦기도 바빴어.” 전생에 도윤재는 얼굴로 먹고살던 한물간 꽃미남 배우였다. 말끔한 외모 덕에 가는 곳마다 팬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를 지키려고 일부러 태권도까지 배웠건만 결국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참 아이러니하고도 웃기는 일이었다. 운동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잘못 본 걸까? 백아린이 호신술을 한다니? 게다가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동작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교장 앞에서 대놓고 사람을 때렸다. 교장이 호통을 치려던 찰나 백아린이 재빨리 휴대폰을 높이 쳐들고 마이크 앞에 놓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맨날 도윤재 보고 수재니, 존잘이니, 비주얼 원탑이라느니 떠받들기 바빴지? 두 눈 똑바로 뜨고 훈남이라 부르던 남자의 민낯을 좀 봐봐.” 말을 마치고 나서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7년 전은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휴대폰 화면이 작고 영상 화질도 흐릿해 얼굴은 제대로 안 보였지만, 음성만큼은 교장의 마이크를 통해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윤재야, 보충 수업한다더니 이 사람은 누구야?” “내 친구 김민수야. 설마 진짜 공부하러 온 줄 알았어? 옛날에 여자는 무식한 게 미덕이라는 말도 있잖아. 난 너의 그런 어리숙한 모습이 오히려 귀엽더라. 공부는 그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보니까 나도 마음이 아파. 우리 그냥 게임이나 하자.” “게임? 무슨 게임?” “주사위 던져서 지는 사람이 옷 한 벌씩 벗는 거야.” “그건 좀... 나 혼자 여자인데.” “괜찮아, 어차피 우리 셋뿐이야. 이번 학기에 수능 시험이라 스트레스도 많잖아. 이참에 풀어보자고.” “알았어.” 곧이어 세 사람이 게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백아린과 도윤재는 각각 두 번씩 져서 외투와 니트를 벗고 이너웨어만 남은 상태였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입니다, 순찰 나왔습니다!” 도윤재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하지? 경찰한테 들키면 분명 오해받을 거야! 난 모범생이라 선생님이 실망하실 게 뻔한데... 엄마는 몸도 편찮으셔서 이 일로 병이 더 악화할지도 몰라.” “윤재야, 얼른 창문으로 도망가. 내가 여기서 막아줄게.” “아니야.” “괜찮아, 난 어차피 문제아라 나쁜 짓 좀 해도 돼.” “그래? 알았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김민수의 목소리가 별안간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살려 주세요! 이 여자가 제 돈을 빼앗으려 해요. 심지어 성폭행까지 시도했어요.” ... 세 사람의 대화는 마이크를 통해 운동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김민수 진짜 최악이다! 거짓말도 너무 뻔뻔하게 하네!” “도윤재가 더 괘씸하지. 백아린을 속인 것도 모자라 옷까지 벗기게 하고, 결국 죄까지 떠넘겼다고? 피해자 코스프레 수준 진짜 역대급이네.” “하, 실망이야. 우리 학교 존잘 선배가 짐승 탈을 쓴 남자라니.” ... 교장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내 두 눈을 부라리며 도윤재를 노려보았다. “도윤재! 너도 별수 없구나. 지금 당장 부모님 모셔 와!” 말을 마치고 씩씩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남은 교사들도 소곤거리기 바빴고, 모두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도윤재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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