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사랑 따윈 없는 고등학교
그땐 그냥 욱해서 말이 튀어나왔고 하필 물리랑 화학은 생각도 못 했다. 백아린은 지금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말은 뱉었고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그 일은 금세 학교 전체로 소문이 퍼졌고 수업 시작 전, 교실로 들어오는 애들 전부가 백아린을 보며 비웃는 눈길을 던졌다. 마치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제 분수도 모르는 애가 또 있네.’
도윤재는 그런 백아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눈가에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흥, 재밌는 쇼가 시작됐군.’
설령 백아린이 수능까지 무사히 치른다고 해도 촌스러운 옷을 입고 운동장을 기어다닌 일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거다. 금정시로 돌아가고 백씨 가문으로 복귀하더라도 사람들은 두고두고 백아린에게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이다.
이 일 하나만으로도 백아린은 영원히 백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그 고리타분한 어른들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도윤재는 송유진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더 올렸다. 그는 백아린이 수능을 무사히 치르게 놔둘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종이 울리고 물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시작했다. 백아린은 정신 바짝 차리고 들었지만 그녀의 현재 이해 수준은 솔직히 아직 중학교에 머물러 있었고 고3 물리 내용을 이해하기엔 무리였다.
복잡한 공식들이 칠판 위에서 춤추듯 펼쳐지자 백아린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새하얘지고 눈꺼풀은 자꾸 내려왔다.
“백아린,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
순간 벌떡 일어난 그녀는 칠판에 쓰인 글씨를 보았다.
[지구와 달이 정지해 있다고 가정하고 지구에서 달 방향으로 로켓을 쏘아 탐사선을 보낸다. 탐사선은 지표면 근처에서 로켓을 이탈한다. W를 탐사선이 달에 도착할 때까지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일, E를 로켓에서 이탈할 때의 운동에너지라 할 때 공기 저항을 무시하면...]
단어들은 다 아는데 모아놓으니 그냥 무슨 암호 같았고 백아린은 그것을 한참 봐도 감이 안 왔다. 그래서 결국 고개를 떨구며 솔직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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