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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증거 있어?

백아린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책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 손목에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장옥희를 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누가 이랬어요?” “저년이에요! 백아린, 그 못돼 먹은 문제아요! 수업 빼먹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 저를 밀쳐 넘어뜨리고 무자비하게 때렸어요.” 장옥희가 악의에 찬 눈빛으로 백아린을 가리켰다. 백아린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못마땅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재봉틀 앞에 서 있던 백아린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장옥희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가 빗자루로 제 팔을 때려서 피가 났잖아요. 그런데 피해자인 척 먼저 우는소리 하면 어떡해요?” 말을 마친 뒤 팔을 내밀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과연 아주머니를 때릴 수 있을까요?” 다들 고개를 돌리자 시퍼렇게 멍이 든 팔이 보였다. 심지어 빗자루 모 하나가 피부를 뚫고 지나가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모두의 안색이 돌변했다. “아주머니! 거짓말하면 어떡해요?” “좀 말썽이긴 해도 애한테 이렇게 심하게 손찌검하는 건 아니죠.” “참 안됐네. 부모도 없이 자랐는데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괴롭힘까지 당하니... 나쁜 길로 빠진 데 다 이유가 있다니까.” ... “아니에요. 전 때린 적 없어요!” 장옥희가 반박했지만 팔에 난 상처를 보곤 말문이 막혔다. 분명 닿지도 않았는데 어찌 저렇게 심한 상처가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이내 무언가 떠올린 듯 황급히 말했다. “스스로 상처를 내서 저를 모함한 거예요.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아주머니 말씀은 제가 일부러 팔을 다치게 하고 그걸 아주머니 탓으로 돌렸다는 건가요?” 백아린이 싸늘하게 물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고, 장옥희를 향한 시선은 더욱 냉담해졌다. 백아린이 성질이 좀 더럽긴 해도 고작 18살밖에 안 된 학생인데 어떻게 그런 악랄한 수를 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세상에 아픈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장옥희는 황당해서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반박하려 했지만 백아린이 먼저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제가 아주머니를 때렸다고요? 증거 있으세요?” “당연하지. 주먹으로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장옥희는 이를 갈며 경고하더니 등을 돌려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보세요. 제 등에 멍이 한가득이에요! 뼈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쟤가 날 때려놓고 자기 팔에 일부러 상처 낸 게 분명해요.” 하지만 옷을 걷어 올리는 순간 등은 말끔하기만 했고 작은 피멍 하나조차 없었다. 백아린을 걱정하던 추금선도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백아린이 주먹질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장단에 더는 놀아날 생각이 없는지라 하나둘씩 나서서 말렸다. “됐어요,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아무리 입양한 자식이라고 해도 딸인데.” “그러니까. 할머니 생각도 하셔야죠. 아주머니를 키워주신 분의 손녀한테 이러시면 어떡해요?” “장사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행동을 조심해야죠.” ... 장옥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백아린을 욕해도 모자랄 판에 왜 자기한테 화살이 돌아온 거지?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재봉점에 걸린 거울에 비친 등을 봤는데 멍 하나 없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연신 확인했고 그제야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럴 리가? 분명 백아린에게 맞았는데? 지금도 뼈가 쑤시는 것 같았다. 이내 씩씩거리며 다가가 백아린의 팔을 움켜잡고 악을 썼다. “이 잡종! 썩을 년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내 몸에 상처가 없어? 대체 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더 이상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백아린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다친 팔을 감싸고 말했다. “우리 나라 형법에 따르면 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상해 정도가 경미와 중간 사이일 땐 징역 1년부터 시작이죠. 그런 처벌 감당할 자신 있으세요?” 싸늘한 목소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악마가 속삭이듯 등골이 서늘했다. 시골 사람에게 전과는 치명적이다. 한 번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면 동네 어디를 가도 뒤에서 손가락질당하며 살게 된다. 백아린의 팔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장옥희는 겁을 먹고 흠칫 떨며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너... 헛소리하지 마! 그 상처, 내가 낸 거 아니야! 진짜 아니라니까?” “아주머니를 믿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백아린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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