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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사람 잡겠네

미용실을 나선 백아린은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길고 좁은 골목 양옆에는 다양한 점포들이 줄지어 서 있다. 7년 후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거리와 달리 지금 이곳은 이름도 생소한 스몰 브랜드와 저렴한 잡화를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2천 원짜리 군것질을 파는 노점들도 여럿 보였다. 소박하고 옛 정취가 묻어나는 풍경을 보자 괜스레 코끝이 시큰했다. 전생에 도윤재의 꾐에 빠져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A시로 따라나서고는 고향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를 키워준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감언이설에 넘어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결국 장례도 없이 급히 땅에 묻히고 말았다. 할머니를 떠올리자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가 주워온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친손녀처럼 정성을 다해 키워줬다. 맛있는 게 생기면 항상 먼저 챙겨주곤 했었다. 하지만 도윤재에게 속아 할머니를 잔소리 많고 돈도 못 버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귀찮아하고 미워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짜증은 물론 욕설까지 퍼부었고, 심지어 그릇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하늘이 또 한 번의 기회를 그녀에게 준 것이다. 백아린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을 돌아서자 끝자락에 조그마한 재봉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안에는 알록달록한 할머니 옷들이 걸려 있었다. 입구 한쪽에 놓인 작은 재봉틀 앞에 추금선이 발판을 밟으며 옷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주름이 가득한 얼굴. “할머니...” 백아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린아, 웬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 추금선은 고개를 들고 손녀를 바라보았다.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급히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네가 미리 올 줄 몰랐어. 금방 밥 해줄게.” 목소리에 아낌없는 사랑이 묻어났지만 동시에 조심스러움과 불안함도 섞여 있었다. 백아린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할머니는 쉬세요. 오늘부터는 제가 밥할게요.” “아니야, 넌 공부나 열심히 해. 온종일 수업하느라 힘들었지? 가서 TV라도 좀 보고 있어. 금방 밥 할 테니까.” 추금선은 버티고 서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커다란 모란꽃이 그려진 긴팔 상의를 입은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이게 누구야? 수업 벌써 끝났어? 다른 애들은 아직 집에 안 온 것 같던데, 설마 소문대로 진짜 모텔 가서 퇴학당한 거 아냐?” “옥희야, 그건 오해야. 아린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말조심해.” 추금선이 화가 난 듯 나무랐다. 장옥희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엄마도 참,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애를 감싸면 어떡해요? 어젯밤 경찰까지 다녀갔는데 뭐가 오해라는 거예요? 아무리 나이가 드셨다고 해도 그렇지, 아직 눈은 멀쩡하잖아요.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아이를 손녀로 입양할 수 있죠?” 백아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생에 장옥희는 추금선이 입양한 딸로 기억했다.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줄곧 할머니의 재산을 노렸다. 특히 그녀가 나타난 이후로는 매번 문제를 일으켜 모녀는 어쩔 수 없이 따로 사는 신세까지 갔다. 그렇게 장옥희는 점포 절반을 나눠 받아 옆집에서 살면서 의류를 떼다 파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다. 돈을 벌긴 했지만 추금선의 손바느질 옷이 훨씬 품질이 좋아 재봉점을 닫기 전까진 손님들이 본인한테 몰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가게까지 눈독 들였다. 백아린은 당시 고향을 떠나 우연히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유언으로 집을 그녀에게 남기겠다고 했지만 장옥희의 끈질긴 괴롭힘 끝에 결국 명의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전생에는 할머니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이번 생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게 놔두지 않을 거로 다짐했다. 이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눈썰미가 좋아서 종일 도박만 하는 남편을 골랐나 봐요? 아들은 또 어디서 난쟁이를 얻었는지. 나한테 뭐라 할 시간에 댁에 가서 남편이나 좀 달달 볶아요. 도박 끊고 돈 벌어서 얼른 아들을 외국에 보내 키 수술이나 시키라고.” “너...! 이제 눈에 뵈는 게 없구나? 감히 어른한테 막말해? 오늘 아주 내 손에 죽어날 줄 알아.” 장옥희는 옆에 놓인 빗자루를 덥석 집어 들더니 이를 악물고 백아린을 향해 휘둘렀다. “아린아, 조심해!” 추금선이 깜짝 놀라 외치며 다급히 막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워낙 느려서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장옥희는 이미 백아린 앞에 다가왔다. 빗자루가 닿을 듯한 순간 백아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전생에는 늘 당하기만 했으니 이번 생에는 다 되돌려줄 것이다. 이내 빗자루에 맞아 쓰러진 척 몸을 뒤로 젖히고 반동을 이용해 밑동을 확 잡아채서 장옥희를 끌어당겼다. “아이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장옥희가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백아린이 재빨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장옥희의 등에 책을 받쳐놓고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악! 아파! 이 잡종이! 감히 날 때려...” 장옥희가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점 거칠어지는 공격에 통증이 밀려와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목청껏 소리쳤다. “아이고! 살려주세요! 망나니가 사람 때려요!" “아린아, 그만해.” 추금선이 초조한 얼굴로 말렸다. 거리에 상인이 워낙 많았고, 안 그래도 쉬쉬거리는 마당에 가족에게 손찌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앞날에 큰 흠이 남을 게 뻔했다. 정작 백아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장옥희를 밀치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당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음껏 소리쳐요. 더 크게 얘기해요. 이참에 사람들을 싹 다 불러 모아요.” “이...!” 겁 따위 없는 백아린의 모습에 장옥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다시 목청껏 소리쳤다. “여러분! 빨리 와보세요. 세상에나! 학생이 어른을 패고 있어요. 아이고, 사람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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