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도망간 백아린
운동장 밖에는 이미 다른 반 학생들까지 몰려와 있었고 교실 안에서는 모두가 서둘러 재촉하고 있었다. 백아린은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오늘 자신이 졌다면 방소희와 양민지가 훨씬 더 심하게 굴었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가 예상했던 건, 방소희와 양민지가 창피함과 분노, 당혹스러움에 결국 울기까지 할 모습이었는데 방소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말했다.
“내기에서 졌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나도. 거북이 기어가기쯤이야 뭐, 창피한 것보다 무서운 건 신용을 잃는 거니까.”
양민지는 그렇게 말하며 방소희의 팔을 끼고 둘이 나란히 거북이 복장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태도만 보면 의외로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주변 아이들도 어리둥절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왜 갑자기 저렇게 변했지?”
백아린은 순간, 등줄기를 스치는 낯선 기운을 느꼈다.
자신이 아는 양민지와 방소희라면 절대 이렇게 순순히 물러설 애들이 아니다.
‘혹시... 뭔가 뒤에서 준비한 게 있는 걸까?’
백아린은 반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서 운동장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거북이 옷을 입은 양민지와 방소희가 운동장을 기어가고 있었다.
운동장 주변에서는 웃음과 수군거림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하하, 진짜 거북이 두 마리 같다. 평소에 그렇게 잘난 척하던 애들이 이렇게 기어가네.”
“그러게, 이건 평생 가는 흑역사지. 두고두고 놀림감 될걸?”
“아니 졸업하고... 아니 나이 들어서까지도 난 이 장면을 기억할 것 같아.”
...
방소희와 양민지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들으며 손바닥이 땀에 젖도록 꽉 움켜쥐었다.
‘이 모든 건 다 백아린 때문이야, 언젠가 반드시 이 빚을 갚고 말 거야. 아니 언젠가가 아니라 내일. 내일이면 돼!’
두 사람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며 계속 앞으로 기어갔다.
한여름, 비록 해가 기울었지만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두 사람의 등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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