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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캐리어를 끌고 언니 온이윤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온채하는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운성 빌리지에서 나올 때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고, 현금도 고작 4만 원뿐이었다. 결혼 후 3년 동안 끊임없는 싸움 끝에 중증 우울증에 걸렸고, 사람들 시선을 피하려 하루 종일 별장 안에서 요리만 파고들었다. 손에 물집이 터져 피가 배어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배승호를 사랑했고, 기울어 가는 관계라고 해도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밥상이 먹는 사람 없이 식어간 횟수를 셀 수조차 없는 와중에, 그는 단 한 번도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온이윤은 온채하의 친언니가 아니다.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서 함께 도망치듯 상경했고, 온이윤은 곧 한 가정에 입양됐다. 지금은 남편 신우혁과 아담한 아파트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살고 있다. 온채하는 굶어 죽기 직전 배승호에게서 건네받은 찐빵 하나에 뻔뻔스레 매달렸고, 그와 함께 전전하며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돈을 벌었다. 옷에서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옷 차림의 온이윤이 문을 열자 얼굴에는 놀라움이 번졌고, 안방에서는 형부의 투덜거림이 흘러나왔다. “누구야?” 온이윤은 서둘러 동생을 안으로 들이고 욕실에서 깨끗한 수건을 가져왔다. “채하야,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옷도 다 젖었네. 승호랑 또 싸웠어?” “언니, 나 오늘 밤만 여기서 잘 수 없을까?” “자고 가, 괜찮아. 그런데 방이 좁아서 좀 이해해 줘.” 온이윤은 새 잠옷을 건네고 재빨리 침구를 폈다. 욕실은 비좁았지만 샤워 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었고, 구석에는 오래된 물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온채하는 급히 씻고, 새벽이라 드라이어 소리를 내기도 미안해 젖은 머리 그대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정말 작았다. 1.5m 침대 하나와 폭 50cm 남짓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그때 안방에서 신우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데?” “채하야. 승호랑 다퉜나 봐.” “재벌가 며느리가 웬일이래? 배승호가 어떤 인간인지 너도 알잖아. 나 배성 그룹 밑바닥에서 3년을 일했어도 그 인간 얼굴 한 번 못 봤다니까.” “됐어, 채하는 내 동생이야.” 속삭임이 뚝 끊겼다. 온채하는 수건으로 찰랑거리는 머리끝을 감싸고 침대에 누웠다. 아침 7시, 부엌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밤새 머리는 자연스럽게 말랐지만 두통이 심했다. 그녀는 억지로 거실로 걸어 나갔다. 식탁에는 반찬 다섯 가지가 놓여 있었다. 형부 신우혁이 접시를 놓으며 손짓했다. “채하야, 얼른 앉아. 네 언니가 아침부터 생선 사 와서 국 끓였어.” 부부 둘 다 직장인이라 평소에는 식빵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오늘은 온채하 덕분에 한 상을 차렸다. 온이윤은 밥 세 공기를 가져와 웃으며 말했다. “자, 먹어.” 온채하의 피부는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밝았다. 12살부터 배승호와 붙어 다닌 뒤로, 그는 물질적으로 그녀를 굶긴 적이 없었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온채하는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지만 배승호는 그녀를 여동생 정도로만 여겼다. 두통 탓에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신우혁이 갈비를 밀어주며 떠들었다. “네 언니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만들었어. 채하야, 나 배성 그룹에서 일하는 거 알지? 우리 부서 상사 얼마나 재수 없는지 몰라. 어제는 부서 막내를 울리기까지 했다니까. 듣기로는 낙하산이라고 하던데 내 월급도 두 번이나 깎였어. 혹시 승호한테 한마디 좀...” 온이윤이 눈을 흘기자 신우혁은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급히 생선국을 떠 주었다. “너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어젯밤 비 맞아서 그런가? 얼른 국 좀 마셔. 형부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온채하는 창백한 얼굴에 미열 같은 붉은 기를 띠고 눈을 들었다. “형부, 죄송해요. 저 승호랑 이혼했어요.” 순간 식탁이 고요해졌다. 신우혁은 잠깐 놀라더니 물었다. “그러면 재산의 절반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채하야, 승호가 너를 최고의 대학교에 보냈다지만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잖아. 너는 일도 안 해봤으니 돈 관리 못 할 텐데, 큰돈 가지고 있으면 위험해.” “신우혁!” 온이윤이 단호히 나무랐다. 신우혁은 입을 다물고 나물만 집어 먹었다. 두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다. 대도시로 도망쳐 겨우 살아남았고, 온이윤은 입양됐지만 온채하는 배승호와 함께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배승호도 지친 몸으로 그녀를 학교에 보냈다. 온이윤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네 돈은 네가 잘 보관해. 집 사고 싶으면 형부가 아는 사람...” “나 아무것도 안 받기로 했어.” 온채하는 국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사람 돈 안 줬다고.” 신우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갈비를 자기 쪽으로 끌어와 절반을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뒤에 우리 엄마 건강검진 오시니까 객실 정리해. 집안 식구가 먼저야.” 거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고, 향긋하던 밥상은 한순간에 김이 식었다. “언니, 미안해. 곤란하게 해서.” 온이윤의 눈가가 붉어졌다. “곤란하지 않아. 너희 왜 이렇게 된 거야? 승호가 예전에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몰래 알바한 거 들키고 욕먹어도, 하루 다섯 탕 뛰며 두 사람 학비 대고, 장학금도 다 너한테 썼잖아. 교통사고 났을 때 밤새 번역 일하며 병원비 댔고... 왜 지금은 돈 벌고 나니까...” 온채하는 목이 메어 마른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궁핍했지만 따뜻했던 과거 때문에, 거미줄 같은 끈을 손끝으로 7년이나 더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제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손을 놓기로 했다. “언니, 나 오후에 바로 일자리 알아볼게.” “채하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울 수 없었다. 결혼 3년 동안 이미 눈물은 말랐다. 온채하는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자처했다. 온이윤은 그녀의 고운 손에 기름때가 묻는 걸 못내 안쓰러워했다. “이 손이 어디 집안일하는 손이야. 승호가 아무리 가난했어도 너한테 이런 일 시키지는 않았잖아.” 그 말에 온채하는 손이 굳었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꿰뚫었다. 온이윤은 출근해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집을 나섰고, 온채하는 점심까지 혼자 머물다가 신분증을 챙겨 가정법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후 1시가 되어도 배승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늘 그랬듯 받지 않았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성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 비서님, 배승호는 어디에 있죠?” “사모님, 대표님은 출장 중이십니다. 아마 3일 뒤쯤 돌아오실 것 같아요.”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성시현에게서만 그의 일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어지러움에 눈앞이 흐려졌다. 온채하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 겨우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최근 일정표를 저한테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 맞출 일이 있어서요.” 성시현은 맞은편 의자에 앉은 남자를 힐끔 보았다. 배승호에게서는 찬 기류가 흘러나와 누구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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