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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김연주는 한숨 돌리고는 언성을 낮춰 온채하에게 말했다. “채하야, 언제 집에 올 거야? 어제는 비까지 왔잖아. 또 감기라도 들까 봐 할머니가 음식 좀 가져왔어.” 배승호는 계약서를 넘기며 코웃음을 쳤다. “우리 집에는 밥하는 사람 없는 줄 아세요?” 바깥소문이 시끄럽자 김연주가 두 사람 상황을 살피러 일부러 온 것이 뻔했다. 온채하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오늘 일자리 알아보러 나왔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할머니.” 김연주는 안도하며 방긋 웃었다. “그래, 그래. 집에서 혼자 있으면 또 우울해진다니까. 무슨 일 하든 말만 해. 승호한테 시켜서 일은 적고 돈은 많은 자리 구해 줄 테니까. 젊은 사람들은 그게 제일 좋다고 하잖아.” 온채하는 더 들으면 김연주가 자극을 받을까 봐 적당히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뚜뚜 소리가 이어지자 김연주는 쿠션을 집어 배승호에게 던졌다. “어서 말해! 배성 그룹이 망하기라도 했니? 감히 우리 채하를 취직시켜?” “할머니, 걔가 알아서 자립하겠다잖아요. 왜 그러세요.” 김연주는 속이 터질 지경이라 가슴을 두드렸다. “네가 네 형 반만 점잖았어도....” 배승호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점잖아? 그 인간은 가면을 쓴 늑대일 뿐이야.’ 재원시로 돌아온 뒤 칼부림과 습격을 수백 번도 넘게 겪으며 그는 이미 어지간한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김연주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됐고, 채하랑 사이좋게 좀 지내. 그 애 참 고와서 내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어. 그때는 네가 데려오겠다고 난리더니 왜 이렇게 엉망이 됐니.” 배승호는 대꾸하지 않고 계약서만 들여다봤다. 잠시 뒤, 온채하가 돌아왔다. “할머니.”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인사하고 몇 걸음 옮기자 눈앞이 까매져 거의 쓰러질 뻔했다. 김연주는 기절할 듯 놀라며 달려왔지만, 온채하는 이미 테이블에 몸을 의지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안색 창백해진 그녀가 숨 가쁘게 말했다. “할머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약간 어지러워서 그래요.” “이런 천벌받을...! 배승호, 채하가 열이라도 나서 잘못되면 넌 끝이야!” 두 사람 말다툼이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온채하는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임재준이 찾아와서 온채하의 체온을 재고 간단히 진찰했다. “몸이 약해서 열이 난 거예요. 며칠 푹 쉬고 열만 떨어지면 괜찮습니다. 여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연주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온채하를 보더니 금세라도 배승호의 귀를 잡아당길 기세로 말했다. “얘를 어떻게 키운 거야! 채하는 왜 자꾸만 말라 가는 거니?” 임재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볍게 영양실조도 있습니다.” 배승호의 얼굴이 순간 어둡게 변했다. ‘내 여자가 영양실조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웃음거리가 될 거야.’ 그는 별장에서 온채하를 돌보던 도우미 두 사람을 위층으로 불러올렸다. 두 사람은 겁에 질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대표님, 저희 탓이 아니에요. 사모님이 음식을 잘 안 드세요. 하루 종일 책만 보시고, 식사도 자주 잊어버리세요.” “맞아요, 저희가 아무리 챙겨도 안 드셔서...” 배승호가 낮게 물었다. “평소에 무슨 요리를 했지?” “요즘은 게가 제철이라 게살 요리를 많이 했고요. 소고기에 돼지고기도 빼놓은 적이 없어요.’ 배승호가 냉소를 흘렸다. “너희가 먹고 싶어서 한 거지? 3년을 돌봤다면서 애가 게 알레르기 있는 것도 몰라? 고기도 안 좋아해서 기름을 최대한 빼야 해.” 도우미들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울상이 됐다. “정말 몰랐습니다, 대표님!” 김연주는 이런 상황을 수없이 보아 왔다. 온채하가 워낙 사랑을 못 받으니 도우미들까지 제멋대로 굴었고, 온채하는 하소연하는 성격도 아니라 그냥 참아 왔다. 그러다 끝내 몸까지 이렇게 망가진 것이다. 배승호의 표정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눈가에는 서늘하고 폭력적인 조소가 번뜩였다. “짐 챙겨서 전부 나가.” 두 도우미는 본가에서 데려온 터라 김연주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들은 김연주의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여사님, 저희가 배씨 가문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아시잖아요. 제발 내보내지 말아 주세요.” 김연주는 발로 그녀들을 밀어냈다. “주인은 영양실조라는데 너희 둘은 얼굴이 둥글고 허리까지 두툼하네. 그동안 맛있는 것 챙겨 먹느라 바빴지?” 두 사람은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져 더는 한마디도 못 했다. 사실 온채하는 늘 말없이 책만 봤고, 식사라고 해봐야 배추와 두부뿐이었다. 대부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 우울증 같기도 했다. 게다가 누구나 알다시피 그녀는 사랑받지 못했고, 배승호 역시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도우미들의 배짱은 갈수록 커졌다. 값비싼 식재료, 특히 킹크랩과 전복 같이 이름난 식재료라면 죄다 그녀들 식탁으로 들어갔지만, 온채하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여사님, 저희... 저희...”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물러났다. 김연주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배승호의 뺨을 후려쳤다. “네 꼴 좀 봐! 그렇게 싫으면 빨리 이혼하지 그랬니? 채하 팔자는 도대체 얼마나 사납길래 너 같은 놈을 만난 거야!” 예상치 못한 따귀에 배승호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임재준은 옆에서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김연주가 온채하를 이렇게까지 아끼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배승호는 반응하지 않고 김연주의 어깨를 살며시 돌렸다. “할머니, 이제 그만 쉬세요. 그리고 채하가 빨리 낫게 여기 머무르시면서 지켜봐 주세요.” 김연주는 그의 손을 툭 뿌리쳤다. “너 똑똑히 알아둬. 나는 채하가 너보다 백 배는 좋아. 네가 소중한 줄 모르면 내가 채하한테 새신랑 찾아 줄 거야.” 배승호의 눈동자가 차게 식었다. “채하가 저 말고 누구랑 산다는 거예요? 할머니, 채하는 12살 때부터 제 곁에 있었어요.” 한때 온몸에 살 없이 뼈만 남아 비틀거리던 작은 소녀가 있었다. 그에게서 얻은 빵 하나를 금덩이라도 되는 양 품에 꼭 안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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