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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연애 5년 차, 변호사 남자친구와의 결혼식은 또다시 리허설로 끝났다. 이번이 벌써 52번째 파투였다. 되돌아보면 52번이나 반복된 결혼식 리허설, 그 악몽은 우리가 다니고 있던 법무법인에 새로 들어온 여자 인턴 변호사 하나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결혼식 날, 그는 자신이 사수로 맡은 인턴 변호사가 서류를 잘못 처리했다며 갑자기 사무실로 돌아갔고 나는 결혼식이 예정된 해변에서 하루 종일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두 번째 결혼식이 한창이던 순간, 그는 그 인턴이 다른 파트너 변호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또다시 신부인 나를 두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나는 하객들의 비웃음 속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 있어야 했다. 그 뒤로도 우리의 결혼식만 잡히면 매번 그 인턴에게 사고가 터졌고 그는 언제나 나보다 그녀를 먼저 챙겼다. 결국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이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서원시를 떠나던 날,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나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 오늘은 나와 송연석의 52번째 결혼식 날이었다. 이번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은 양가 가족뿐이었다. 나는 고열을 참아가며 예식 순서와 예식장 세팅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지만, 남자친구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신랑 대기실에서는 급히 달려오다 삐었다는 고유미의 다리를 붙잡고 내내 주무르고 있었다. 고유미는 매번 우리 결혼식을 망쳐온 장본인, 바로 그 신입 인턴이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걔가 언제 우리 딸 힘들까 봐 한 번이라도 마음 아파한 적 있냐고!” 이번만큼은 정말 제대로, 끝까지 예식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송연석은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이번 결혼도 취소해야겠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는 마음에 황급히 따라나섰지만, 그는 내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유미 씨가 발목인대를 심하게 다친 것 같아... 병원에 데려다줘야겠어. 이번 결혼식은 그냥... 다음에 다시 하자. 다음에는 절대 도망치지 않을게.”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는 고유미를 부축해 조수석에 태우고 떠났다. 연애한 지 어느덧 5년, 그리고 고유미 때문에 결혼식이 취소된 것도 벌써 52번째였다. 예전 같았으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왜 꼭 결혼식 날마다 그 여자에게 끌려가는 거냐고, 신부인 나보다 그 여자가 더 중요한 거냐고 따졌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웃으며 보내줬다. “괜찮아. 유미 씨 데리고 병원부터 가봐.” 송연석은 너무 순순히 받아들이는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흠칫하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저녁에 네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사 갈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서둘러 창문을 닫고 시동을 건 뒤 곧장 멀어져 갔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나는 애써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천천히 내렸다. 그는 내가 딸기를 싫어하고 케이크도 질색한다는 걸 까맣게 잊은 듯했다.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건 애초에 내가 아니라 고유미였을 텐데...’ 예전에도 송연석은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딸기 케이크를 사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한 입 삼키려다가 뱉으며 딸기도 싫고 케이크는 더더욱 못 먹겠다고 솔직히 털어놨었다. 그때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적으며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영원히’는 고작 1년도 가지 못한 채 그렇게 끝나버렸다. 머리 위 태양은 따갑게 내리쬈지만, 신기할 만큼 내 마음은 싸늘하기만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쉰두 번이나 입었던 이 웨딩드레스를 가위로 천천히 잘라내기 시작했다. 잘려 나간 웨딩드레스처럼 나를 옭아매던 지난 5년의 감정도 이제는 깔끔히 끊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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