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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도서찬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옆에 있던 한연서는 황노을의 전화인 걸 보고는 두 눈에 의아함과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 “오빠.” 한연서가 머뭇거리는 도서찬을 부르고 나서야 도서찬은 정신을 차렸다. ‘연서가 늦은 밤에 날 만나러 왔다는 기사가 터지자마자 노을이가 바로 전화 왔어. 혹시 따져 물으려고?’ 도서찬은 미간을 찌푸리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끊은 지 몇 초도 안 되어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도 황노을이었다. 순간 마음속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오빠, 안 받아?” 한연서가 묻자마자 도서찬은 다시 전화를 끊었고 황노을의 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한연서는 뭔가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을 땐 두 눈에 의기양양함이 스쳤다. 전부 그녀가 의도했던 것이었다. 도서찬에게 낮에 올린 숏츠를 일부러 알려줬고 금방 터진 기사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여 그가 황노을의 전화를 받지 않도록 만들었다. “가자. 늦었어.” 도서찬은 외투를 집어 들고 한연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그들은 도경 그룹의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서 내려갔다. 두 사람이 건물에서 파파라치에게 포착되어 온라인에 기사가 터진 그 시각 황노을은 구급차에서 내렸다. 롤링 들것에 실려 빠르게 병원 안으로 들어갔고 황노을의 이마에서 흐른 피가 들것을 붉게 물들였다. 황노을은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눈앞에 병원의 흰색 형광등이 빠르게 지나갔고 귓가에 시끄러운 배경 소리와 여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분한테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다 끊어버렸어요. 이제 어떡하죠? 또 걸어야 하나요? 이번에도 안 받으면 어떡해요?” “차 문이 심하게 찌그러진 거 못 봤어요? 지금은 이마 상처만 보이지만 장기가 손상됐을 수도 있다고요. 일단 치료 진행하고 계속 전화해봐요.” “알겠습니다.” 다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병원에 무슨 언쟁이 벌어진 듯했다. 황노을은 때로는 의식이 들었다가 때로는 의식을 잃었다. 공기 중에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지막에는 임지은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지은이 소리를 질렀고 황노을은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 임지은은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황노을이 응급실로 실려 들어가는 것을 보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이번에 실려 온 곳은 도산 병원이었고 마침 임지은이 오늘 밤 당직이었으며 또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잠시 들렀다. 조금 전 그들은 황노을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 황노을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임지은은 황노을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임지은의 아버지가 병원장이라 그녀의 으름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노을이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임지은은 옆에서 황노을의 핸드폰을 들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망설이는 여경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여경에게 의사이자 황노을의 절친임을 밝혔다. 여경이 황노을의 가족과 연락하려 하는 걸 보고는 핸드폰을 가져왔다. 화면에 가득한 부재중 전화를 본 순간 임지은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웅웅. 임지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푸시 알림이 떠 있었다. [도서찬, 한연서, 도경 그룹에서 함께 차를 타고 나와.] ‘뭐야? 전화를 안 받은 이유가 내연녀랑 같이 있어서였어?’ 임지은은 곧바로 도서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두 번째 통화의 연결음이 거의 끊기기 직전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죠?” 도서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분노에 찬 임지은이 소리를 질렀다. “노을이 전화를 왜 안 받아요?” 애스턴마틴 운전석에 앉은 도서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신자가 임지은인 걸 확인하자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노을이가 지은 씨한테 전화하라고 시켰어요?” “아니요!” 임지은이 거의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냥 전화한 거예요.” 앞에 빨간 불이라 도서찬은 브레이크를 밟고 전에 설정해두었던 황노을의 무음 설정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허. 노을이가 시킨 게 아니면 뭔데?’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자 도서찬은 다시 출발했고 애스턴마틴이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그의 기분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한연서가 도경 그룹에 온 다음부터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황노을의 속셈이 무엇인지 그가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지금 당장 도산 병원으로 와요.” 임지은이 명령하듯 말했다. “안 갑니다.” 도서찬의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노을이 또 예전처럼 임지은한테 가서 울고 있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좀 지나친데? 임지은더러 나한테 전화하라고 하다니.’ 황노을과 이혼 얘기를 꺼낸 이후 그녀의 억지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노을이 차에 치였어요.” 임지은의 목소리가 싸늘해지더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도서찬 씨, 양심이 있으면 지금 당장 와요.” 끽. 브레이크 소리가 귀청을 때렸고 차가 멈춰 섰다. 곧이어 뒤차 운전자의 욕설이 들려왔다. 도서찬은 임지은의 통화 종료 신호음을 들으면서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핸들을 꽉 잡았다. 한연서는 조수석에 앉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때 옆에 놓아둔 핸드폰 화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힐끗 보고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초조한’ 표정으로 도서찬을 쳐다봤다. “오빠, 노을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빨리 병원에 가자.” 한연서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작은 일이 아니야. 엄청 심각할 수도 있다고. 그래도 도산 병원에 가서 다행이야. 임지은 씨가 노을 씨 절친이라며? 임지은 씨가 먼저 가서 잘 돌봐줄 거야.” 한연서는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을 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교통사고라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황노을이 절친이 근무하는 병원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친의 아버지가 그 병원의 병원장이었다. 게다가 도서찬에게 수십 통이나 전화할 시간이 있는 걸 보면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황노을과 임지은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연서는 절대로 도서찬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오빠, 오빠랑 함께하고 싶지만 만약 노을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려 헛구역질했다. 진정되었을 땐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걱정 가득한 도서찬의 눈을 보며 한연서는 가방 안의 가짜 혈액 팩을 감추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날 걱정하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 도서찬이 이를 꽉 깨물었다. 차가 다시 출발했고 애스턴마틴은 방향을 돌려 도산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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